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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하나에 7만 달러, 장난감도 모으면 장난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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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여기 수집가의 전형에서 멀찍이 벗어난 이가 있다. 백성현(59) 명지전문대 디자인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자신을 ‘디자인 콘텐트 수집 연출가’라 소개한다. 그는 테마를 찾아 전문적으로 수집하고, 컬렉션을 완성하면 펀딩을 받는다.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는 것은 투자자의 몫. 백 교수는 콘텐트를 채우고 전시 연출과 디자인을 맡는다. 그렇게 완성한 박물관만 우리은행 금융사박물관의 저금통 코너, 로봇 박물관, 세계박람회 기념물 전시관 등 세 곳이다. 고서 속 서양 일러스트레이션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 자료를 모아 명지대-LG 연암문고를 채우기도 했다. 수집품을 넘겨주는 조건은 ‘그 분야 세계 1등 컬렉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세계 1위’란 자부심을 가질 법하다. 그의 컬렉션에는 최초의 저금통인 고대 이집트ㆍ로마 시대의 작품, 40개국 초기 로봇 오브제, 150여 년 역사를 지닌 세계박람회 기념물 3000여 점이 포함된다. 최초의 세계박람회인 1851년 런던 박람회 기념물만 17종을 모았다. 1968년부터 세계박람회수집가협회(WFCS)를 결성해 자국의 엑스포 기념물을 수집해 온 미국은 2006년 수집 중단을 선언했다. 1900년대 이전 유럽 유물이 핵심 콘텐트임을 인지해서다. 미국도 못한 걸 그가 해낸 셈이다.

백 교수는 로봇박물관의 하드웨어를 맡은 인서울 이윤제 사장과 함께 ‘철이 만든 경이로운 예술, 가위’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이미 컬렉션을 완성해 인서울 측에 넘겼다. “보통 사람들은 독특한 가위라봐야 엿장수 가위 정도만 떠올립니다. 전체가 아닌 부분만 보는 데 익숙해 그래요.” 상상을 뛰어넘는 예술적 가위들이 전 세계 역사에 즐비했다는 뜻이다. 가위의 뒤를 이을 컬렉션 역시 차곡차곡 채워 가고 있다. 미완성이라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란다.

1 ‘메고 맨’. 1955년 일본산. 소더비 경매에서 7만 달러에 팔리는 기록을 세운 것과 같은 제품이다. 2 앤디 워홀 1983년작 팝아트 ‘다색 로봇 넷(four multicolored robotㆍ뒤의 그림)’의 소재가 된 ‘분쇄 로봇’. 남들이 하잘것없다 여기는 것으로부터 예술을 빚어내는 ‘팝아트’의 정신은 백성현 교수의 수집 철학과 꼭 들어맞는다.

지금껏 완성한 다섯 가지 컬렉션 중 대중에게 가장 환영받은 것은 앤티크 로봇이다. 그가 수집한 로봇은 컴퓨터 기계 장치가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했던 양철인간 ‘틴맨’, 우주소년 ‘아톰’, ‘슈퍼맨’, ‘로보트 태권V’ 등 소위 ‘로봇 장난감’이 대다수다. “로봇의 엄마는 예술, 아빠는 과학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과학으로만 접근했지요.”

사실 실물 로봇을 수집하려 사방의 문을 두드려봤단다. 그러나 과거의 로봇들이란 연구실에서 부품으로 해체·재활용되어 그 존재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결국 로봇의 원형이 남아 있는 것은 장난감뿐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까짓 장난감’이라며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1955년에 제작된 일본의 ‘메고 맨’은 2000년 소더비 경매에서 장난감 로봇 사상 최고가인 7만 달러에 팔렸다.

그래서 그는 “파인 아트 수집 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왜 미술품에 목맵니까. 서양이 우리보다 잘하고, 수집품의 수준도 높은걸요. 종속을 전제로 한 문화에선 새로운 게 나올 수 없어요. 상상력과 창의력을 충족시키는 건 평면보다는 입체입니다. 장난감 로봇은 디자인의 결정체죠.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도 문학에서 나오는 스토리보다 밸류가 크고요. 세계 최초의 로봇, 각국 초기 로봇이 우리에게만 있습니다. 로봇 시대가 오면 그 콘텐트가 갖는 파워는 어마어마할 거예요.”

단순 투자 수익률만 놓고 봐도 비교가 되지 않는단다. 앤티크 로봇의 경우 100배까지 뛰는 경우도 흔하다고 그는 말한다. 초기 태권V의 경우 200~500배가량 뛰었다.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이 선거를 의식해 공간을 만드는 데만 주력해 문제예요. 대전 엑스포나 여수 세계박람회도 채워 넣을 콘텐트가 없어 아우성이잖아요. 디테일에서 자라나는 게 콘텐트입니다. 하드웨어와 콘텐트를 동시에 마련해야 해요. 이제는 문화ㆍ디자인 콘텐트의 세계 전쟁 시대거든요.”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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