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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투서·루머 그리고 ‘배제 시리즈’ … 검찰총장 인선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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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준규 카드’로 막을 내린 14일간의 새 검찰총장 인선 과정은 복기할 대목이 적지 않다. 검찰 개혁과 조직 안정의 적임자인지를 찾기보다 ‘누구는 이래서 안 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 된다’며 탈락자를 가리는 과정이 주였다고 한다. 이른바 ‘네거티브식’ ‘뺄셈식’ 인선이 이뤄진 거다.

물론 천성관 전 후보자의 낙마를 지켜본 청와대로선 돌다리도 두들겨 본 뒤 건너겠다는 심정이었을 게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그렇게 사람이 없을까”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출신 지역과 출신 학교가 큰 변수가 되다 보니 ‘어디어디 출신은 배제한다’는 이른바 ‘배제 시리즈’가 인선 작업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인사 초반엔 ‘영남 출신 배제’와 ‘고려대 출신 배제’가 대세였고, 막판에는 ‘호남 출신 배제’론이 무성했다.

투서와 루머가 난무한 점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악성 루머와 투서는 인사철마다 등장하게 마련이지만, 후보가 6명이나 된 이번 인선에선 양상이 더욱 격렬했다. “이 대통령의 가족들과 너무 가깝다” “너무 신망이 없어 후배들 중 누구도 총장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무능력자” “너무 무색무취해서 만약 총장에 임명되면 운이 좋아 거저 줍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을 앞세워 총장을 하려고 한다” “검찰 내 오렌지족이다” 등 깎아내리기와 사생활 루머가 횡행했다.

더 심각한 건 하마평과 인사 관련 소문이 청와대보다 검찰 내부에서 더 많이 유포됐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에선 “총장을 외부에서 발탁할까 두려운 검찰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흘리고 있다”며 악성 루머의 진원지로 검찰 내부를 지목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천 전 후보자의 낙마에서 김준규 후보자의 발탁까진 꼭 2주일이 걸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임채진 전 총장 퇴진, 천성관 전 후보자 낙마로 엉망이 된 검찰 내부 사정을 고려하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래 보좌한 한 참모는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도 대통령이 새 총장 임명에 2주일을 끈 건 검찰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며 “오죽 시킬 만한 사람이 없으면 뻔한 후보들을 놓고 2주일이나 끌었겠느냐”고 귀띔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도 국세청장을 5개월 이상 공석으로 두며 국세청 내부에 강한 불신을 표출한 적이 있다.

인물난, 경쟁자들 간의 마타도어, 조직의 이해를 앞세운 진흙탕 여론전…. 새 검찰총장 인선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의 실망감을 씻어줄 책임은 이제 검찰 스스로에게 주어졌다.

서승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