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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책] 아즈텍의 비밀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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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를 입은 청년은 다시 한 번 광장을 빙 돌아가며 카메라에 담은 후 자기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카메라를 놓았다. 청년은 셔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국제전화 접속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탈리아 어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찾아냈습니다.”
광장에 있는 청년이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인도 기록보존소에 있는 연락책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코덱스에 관한 정보를 포함해서 참고자료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어쩌죠?”
“그냥 내버려둬. 당분간은 감시만 철저히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예하.”
“이제 시작이야.”
전화기 저쪽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너무 캐고 들거든 모두 처리해. 틈틈이 상황을 보고하도록!”
‘처리하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그들을 ‘죽여 버리라’는 말이었다.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서기 1521년 7월 15일 일요일
플로리다 주, 카요 후에소

도미니크 수도회의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엄청난 파도가 보물을 싣고 가는 갈레온 선(15-17세기에 스페인에서 군함과 상선으로 사용한 대형 돛배 - 옮긴이)의 뒤쪽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파도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짐승 같기도 하고 야만인 같기도 하고 괴물 같기도 했다. 선박의 이름은 ‘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스 안구스띠아스’였다. 파도의 복부는 주변의 어둠과 마찬가지로 검은 색을 띠었다. 거대한 어깨는 검푸른 빛을 띠었고 울퉁불퉁하게 말려 올라간 머리 부위는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거품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새하얀 빛을 띠었다.
파도는 신음소리를 내뱉는 배의 고물 위로 휘청거리는 벽처럼 치솟으며 마치 물이 불은 도랑에 떠 있는 나무 조각 같은 배를 앞쪽으로 밀어냈다. 거센 파도는 최대한 하늘로 치솟으며 겁에 질린 신부의 머리 위쪽의 시커먼 하늘을 가득 채웠다가 불길하게 울부짖는 바다의 악마처럼 배를 덮쳤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바르톨로메 신부는 자신의 삶이 이제 곧 끝날 것임을 예감했다.

그는 다른 몇몇 승객과 함께 배의 허리 부근에서 웅크린 채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바나에서 배에 오른 승객들 속에는 총독의 아들, 돈 안토니오 벨라스케스도 끼어 있었다. 그 꼬마는 귀족의 자제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기 위해 고국인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몇몇 선원이 누에스뜨라 세뇨라에 부착되어 있는 작은 보트들을 풀어 내리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선수루 갑판 옆에 몰려 있었다. 그런 험한 날씨 속에서 배의 아래쪽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이 줄줄 새어 들어오는 어두운 관 속에 갇혀 있기보다는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자신들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직접 지켜보는 편이 나을 거라고 모두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뱃머리 쪽의 세로돛은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또 밧줄과 삭구는 찢어져 엉망이 된 돛베의 꼭대기를 우박처럼 두드리고 있었다. 다른 돛들 역시 거센 비바람에 너덜너덜해진 지 이미 오래 되었다. 돛의 아래에 있는 활대는 완전히 달아나버렸고 뱃머리에서 앞으로 돌출된 둥근 재목도 쪼개져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선미에 물이 고이는 것을 보면 배 깊숙이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게 분명했다. 닻이 떨어져 나가버려 배는 거센 바람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큰 돛대는 신음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선체도 끙끙거렸다. 바다는 범선의 양쪽 옆구리를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사람들은 모두 배가 그날 밤은 고사하고 채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끔찍하게 두들겨 대는 파도를 발견하고서 바르톨로메 신부는 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비와 바닷물에 축축하게 젖은 갑판에 풀썩 주저앉아 캡스턴(닻 따위의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장치 - 옮긴이)과 계주 사이에 있는 닻사슬을 두 팔로 붙들고 늘어졌다. 그렇게 사슬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도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파도는 그의 몸을 연달아 후려쳤다.

파도는 천둥소리를 내지르며 범선을 강타했다. 그 순간 배의 저 안쪽에서 그보다 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의 용골이 암초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깊고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낸 것이다. 배는 보이지 않는 산호의 턱 두 개 사이에 끼고 말았다.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큰 돛대가 쓰러지면서 활대와 둥근 목재가 사나운 바다 속으로 날아갔다.

파도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범선의 갑판을 휩쓸면서 두려움에 떠는 선원들을 집어삼켰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범선에 붙어 있는 작은 보트들을 망가뜨린 파도는 바르톨로메 신부까지 숨이 컥컥 막힐 것 같은 엄청난 물로 뒤덮어버렸다. 파도는 잠시 물러갔다가 다시 거대한 몸을 일으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신부의 두 팔과 무거운 검정색 예복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하지만 신부는 거대한 벽 같은 파도가 지나갈 때까지 손아귀의 힘을 간신히 유지할 수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려고 몸을 일으켜 세운 신부는 갑판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른들은 모두 파도에 휩쓸려나가고 돈 안토니오라는 꼬마만이 돛대의 밧줄을 매는 난간 부근에 뒤엉켜 있는 삭구 속에서 처참한 몰골로 뒹굴고 있었다. 꼬마의 머리는 짓이겨져 엉망이 되어 있어서 모자 아래로 회색 물질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 스페인에서 학교를 다니기는 힘들게 된 셈이다.

바르톨로메 신부는 고물 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그곳에는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릎으로 갑판을 짚으려고 애쓰면서 신부는 입고 있던 예복을 찢기 시작했다. 물속으로 쓸려 들어가면 흠뻑 젖은 옷 때문에 바닥에 가라앉아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무거운 예복을 몸에서 벗겨내었을 때 파도가 또 한 차례 예고도 없이 밀어닥쳤다.
닻사슬을 잡고 있지 않았던 신부는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려갔다. 그는 벌러덩 나자빠지면서 이물 쪽에 뒤엉켜있는 삭구 쪽으로 밀려갔다. 난간에 머리를 들이박는 순간 나무 파편이 목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목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음 순간 뱃전 너머로 굴러 떨어진 신부는 거센 파도에 떠밀려 거친 산호 바닥에 양쪽 어깨와 등을 심하게 부딪쳤다. 거대한 물의 무게에 짓눌린 그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나머지 옷가지가 찢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해저에서 물살의 힘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신부는 물 속에서 두 팔을 풍차처럼 빙빙 돌리면서 얼굴을 위로 향한 채 숨을 참으며 수면으로 솟아오르려고 발버둥을 쳤다.

마침내 신부는 파도가 붙드는 엄청난 힘에서 풀려 날 수 있었다. 그는 물 위로 떠오르자마자 바닷물을 게워내고 미친 듯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파도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다. 숨을 한두 번 들이마셨을까. 파도가 다시 그를 삼켜버려서 그는 파도의 힘에 이끌려 다시 바다 속 밑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거친 모래와 산호에 스치면서 살갗이 찢어졌다. 지칠 대로 지친 신부는 버둥거리며 물 위로 떠올라 또 다시 바닷물을 토해내고 숨을 들이마셨다.

네 번째 파도가 밀려왔지만 이번에는 산호 대신 경사진 모래 바닥에 몸이 닿았다. 신부는 수면으로 올라오려고 힘껏 팔다리를 휘저었다. 젖 먹은 힘까지 다 내서 앞으로 몸을 밀고 나갔다. 거센 파도의 힘으로 해변 쪽으로 밀려나면서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신부는 이때다 싶어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첫 번째 파도만큼 강한 파도가 한 번 더 밀려온다면 생존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발목까지 빠지는 모래 속에서 비틀거리다가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여전히 비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고 있었다. 신부는 사선으로 쏟아지는 비를 얼굴에 맞으며 간신히 눈을 뜬 채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저 앞쪽에 폭이 넓은 모래사장이 보였다. 경사진 모래사장 너머에는 부채꼴의 잎이 달린 야자수와 코코넛이 보였다. 야자수는 으르렁거리는 바람과 거센 빗줄기 때문에 줄기가 한쪽으로 잔뜩 휘어지고 있었다. 아직 익지 않은 코코넛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대포알처럼 숲으로 날아갔다. 신부는 숨을 헐떡였다. 두 다리는 더할 수 없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적어도 미친 듯이 달려드는 파도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것 같았다. 파도는 그의 뒤에서 아직도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었다.

신부는 몸을 질질 끌며 경사진 모래사장을 올라갔다. 위험을 완전히 벗어난 지점에 이르자 멈춰 서서 바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제야 너덜너덜한 스타킹과 속옷만을 몸에 걸친 채 신부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는 아직도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날카롭게 울부짖는 시커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신부는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은밀한 인도와 끊임없는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는 목숨을 건진 것이다.

빗속을 뚫고 배가 걸려있는 암초 부근에서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며 거품이 일어나는 광경이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저 멀리 어딘가에서 범선 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스 안구스띠아스는 선체가 산호초의 날카로운 이빨에 찢겨져 나간 채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이 끔찍한 곳에 바르톨로메 신부만 홀로 남겨두고 자신들의 최후를 맞았으리라.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신부는 아직 걸치고 있는 옷가지 속을 더듬거리며 방수포로 감싼 물건을 찾으려 했다. 그것은 아주 귀한 물건이어서 그는 배에 오르기 전 허리춤에 그것을 단단히 묶어 두었었다. 울부짖는 바람 속에서 그는 절망감에 싸여 길게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님의 적이자 잔인무도한 이단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 - 옮긴이)가 남긴 가장 큰 비밀과 코텍스가 그만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즈텍의 비밀> 폴 크리스토퍼 지음/312페이지/중앙북스/8월 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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