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실업대책 이대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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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막대한 재정자금을 실업대책을 위해 투입하고 있지만 별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실업대책비가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통계로도 1백59만명, 비공식적으로는 2백만명이라는 미증유의 실업은 우리 사회가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처음 겪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내에서나 사회 각 조직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한 채 실업의 모든 부담을 해당 가족에 미루고 있는 셈이다.

현재 진행되는 실업대책은 자금은 있으나 자금을 사용할 조직과 제도가 미흡해 낭비되는 요소가 많다.

실업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정부나 사회는 구조조정이라는 동전의 한쪽 면만 본 채 아직도 구조조정의 다른 한쪽인 구조조정의 대상을 향한 정책의 대강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급한대로 시혜성 사업을 남발해 불만을 무마하려는 대책 이외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재취업시장을 육성하려는 노력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실업대책이 안고 있는 정책방향의 문제는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실업대책은 정부 전체차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노동부만 신경쓸 일 정도로 간단하게 넘기고 있다.

실업이 구조조정의 여파로 생긴 문제라면 전 부처가 달라붙어 진행중인 구조조정의 열기와 같은 강도로 실업대책에도 같이 매달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 구조조정은 대세를 타고 있는 듯이 보이고 실업대책은 별로 빛이 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둘째, 실업대책이 사회부조정책과 혼재돼 있고 전혀 성격이 다른 실업자에 대해 동일한 정책을 펴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크게 보아 실업계층은 네가지 그룹으로 대별된다.

건설일용자를 중심으로 하는 저소득실업자,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무관리직, 제조업 생산직 실업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실업자가 그것이다.

실업자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실업대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당연히 타기팅그룹에 따라 다른 정책을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번째 문제점은 노동행정의 체계와 조직이 대량실업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경직적이고 관료들도 마인드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서 고용보다는 임금상승을 둘러싼 노사분규에 적합하게 조직이 구성돼 있고 이 분야의 경험만 축적돼 있다.

그동안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의 구축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노동행정을 인재양성 육성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건의를 묵살한 결과다.

마지막 문제점은 우리 사회와 경제구조의 경직성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대량실업에 직면해 크게 당황하고 있는 이유는 실업을 있을 수 있는 일로 당연시하고 여러가지 인프라시설을 통해 재취업을 준비하게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나 금융노조의 경우에서 나타나듯이 근로자들이 극단적인 저항을 하는 이유는 '실업 곧 인생의 파멸' 로 등식화하고 사회도 그렇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정리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후 재취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때 효과적으로 정착된다.

우리는 유연성을 추구하는 단계에서 한쪽 측면만 비대칭적 (非對稱的) 으로 강조해 온 셈이다.

그러면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실업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가.

구조조정과 실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자신이 구조조정의 대상이든 아니든 간에 경제가 살아야 재취업도 가능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안해서 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이 점을 국민에게 솔직히,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단기간에 실업증가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실업 이후다.

실업으로 인생이 끝나게 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경제가 어떻게 회생할 것이고 그 기간중에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은 뭣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일자리를 유지해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조금씩 부담해 실업을 당한 불행한 사람들을 지원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된다.

그러지 않으면 공동체의 고리가 무너지고 더 큰 조정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장현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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