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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사건' 유죄선고 의미]안기부 정치개입 첫 단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법원이 대선 과정에서 북풍 (北風) 조작에 개입한 안기부 간부들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한 것은 정치 격동기마다 안기부가 정권수호의 첨병 역할을 해 왔다는 세간의 의혹을 일부나마 밝혀내고 사법적 단죄까지 받아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검찰은 수사 도중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의 자해소동과 "국가기밀인 안기부 자료를 공개하지 말라" 는 정치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사법 사상 처음으로 안기부의 불법적 정보활동을 처벌하는 개가를 올렸다.

피고인들은 재판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 필요한 판단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었다" 며 "특히 오익제 편지 사건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야당의 무책임한 정치공세로부터 안기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 라는 논리를 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특정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을 공포.확산시키기 위해 돈을 건네고, 공개가 금지된 내용을 발표한 것은 공익을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없으며 특별히 긴급한 상황이 아닌 한 적법절차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 고 지적, 국가안보라는 '대의명분' 을 내세운 안기부의 정치개입이 용인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법원이 權씨와 개인비리가 있는 李상생 감찰실장을 제외한 박일룡 (朴一龍) 전차장 등 나머지 간부들에 대해 "상부의 지시를 어기기 어려웠다" 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석방한 것은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또 수사과정에서 일부 드러난 4.11 총선 당시의 판문점 무력시위 등 '북풍' 에 북한당국이 개입했다는 의혹과 안기부와 정치인들의 연관부분은 검찰수사 때부터 제외돼 영구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權씨 변론을 맡은 오제도 (吳制道) 변호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예상한 수준" 이라고 말했으나 검찰은 "인정된 혐의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게 나왔다" 며 즉각 항소의사를 밝혔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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