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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숍 왔나, 음악회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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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조 클래식기타 연주단체 ‘오리엔탈 기타 콰르텟’이 26일 이태리헤어 쌍용점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최원호·이성진·이다해홍용현씨. [사진=조영회 기자]

헤어숍에 갑자기 경쾌한 스페인 민요가 흘렀다. 머리 깎던 헤어 디자이너는 가위잡은 손을 멈췄고, 손님은 고개를 연주자에게 돌렸다. 네 명의 젊은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미용실 한쪽에서 작은 연주회를 열고 있었다. ‘에스파냐 까니’의 흥겨운 선율이 순식간에 매장 전체를 휘감았다. 집시가 곡에 맞춰 춤을 추며 휘젓듯….

26일 오후 3시 천안 이마트 옆의 ‘이태리헤어’ 쌍용점. 330㎥(100평) 남짓한 매장이 40분 간 연주회장으로 변했다. 이태리헤어 위초성 대표원장은 “헤어숍이나 음악, 모두 아름다움 추구하는 데 있어선 같다고 볼 수 있다”며 “고객들이 일상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젊은 음악가를 초청해 ‘헤어숍 콘서트’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 같은 시간에 열 계획이다.

이날 연주회는 최원호(29·최원호클래식기타 학원장)씨가 주축인 4인조 클래식기타 ‘오리엔탈 기타 콰르텟’이 진행했다. “유럽에선 이런 연주회가 흔해요. 소음이 있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도 작은 클래식 연주회가 자주 열리죠. 닫혀 있는 공연장 연주와 마찬가지로 생활 속 연주회도 의미가 크죠.” 파리 유학파인 최씨는 헤어숍 연주회가 그리 어색하지 않은 눈치다. 그러나 다른 젊은 연주자들은 약간 들뜬 상태로 연주를 마쳤다. 엄마를 따라 온 아이들이 연주자 옆으로 뛰어 다니고, 머리 말리는 헤어 드라이어 소음이 들리고, 물잔이 유리탁자에 부딪치는 소리 등 온갖 잡음을 ‘이겨내며’ 연주해야 한다.

합주에 이어 독주가 시작됐다. ‘사랑의 로망스’를 연주한 이다해(여·22·수원대 4년)씨가 청중들 귀를 잡으려 노력했으나, 잔잔한 기타 자연음으론 부족함을 느꼈다. 귀에 익숙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홍용현·24·평택대 3년), 유키 구라모토의 ‘루이즈호수’(이성진·24·목원대 3년) 등이 이어서 무대(?)에 올랐다.

최원호씨는 “가능한 대중적인 곡으로 골랐다”며 영화 ‘디어헌터’ 삽입곡으로 유명한 ‘카바티나’를 연주했다. 조용한 선율이 매장의 소음에 묻혀드는 듯하다 되살아나곤 했다. 그는 곧이어 빠른 탱고곡으로 손님들을 집중시켰다. 큰 박수와 함께 “브라보” 가 연호됐다. 이태리헤어숍 고객 정진택(32·천안 봉명동)씨는 “난생 처음 연주자를 눈앞에 두고 음악을 들었다”며 “클래식이 흐르는 헤어숍에서 머리를 깎는 낭만을 경험할 줄 몰랐다”며 연신 즐거워 했다.

이태리헤어 쌍용점장 정도현(37)씨는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혹시 고객들이 냉담함을 보일까 내심 걱정했다”며 “그러나 막상 연주가 시작되니 매장 업무와 기타 음율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함께 녹아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태리헤어는 최원호씨 클래식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플룻·첼로·바이올린 등이 어울린 실내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평택 등에 11개 헤어숍을 갖고 있는 이태리헤어는 천안엔 쌍용점 외에 신부점·두정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41)571-9378.

조한필 기자

◆기타리스트 최원호는=천안중앙고 졸업 후 목원대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프랑스로 유학, 파리국립음악원 최고 연주가과정을 마쳤다. 연이어 안토니국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한 후 뤼팜파리국제콩쿠르 출전, 2위를 차지했다. 현지 순회공연으로 경력을 쌓은 후 지난해 귀국, 대전팝스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있다. 클래식기타학원(041-575-3454)을 쌍용동 로데오거리 맞은편에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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