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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예감독 데뷔작 영화'처녀들의 저녁식사'·'정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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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남자들의 술자리 음담패설처럼, 주부들끼리의 잠자리 얘기처럼, 처녀들도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섹스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에 임상수 감독 (36) 은 이같은 "평소의 희망사항" 을 옮겨놓았다.

반면 '정사' 로 데뷔한 이재용 감독 (33) 은 결혼생활 10년째인 여인의 삶을 들춰보인다.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면서도 서른아홉살 여성의 심리를 좇는 데 무게중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여느 영화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두 영화는 여성을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 아닌 그 주체로 다루어 여성의 관점을 충실히 반영한 성담론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에선 세 명의 29세 처녀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고 경험한 섹스에 대해 거리낌없이 수다를 펼쳐놓는다.

덕분에 지금까지 어두운 방에 웅크리고 있어야 할 '그' 얘기들은 밝은 조명의 식탁 위로 올라온다.

감독은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호정 (강수연) , 결혼을 꿈꾸며 한 남자하고만 섹스를 하는 연이 (진희경) , 남자와 데이트 한번 안해보았지만 단 한 번의 섹스로 임신하는 순이 (김여진) 등을 통해 요즘 처녀들의 성의식에 밀착해 들어간다.

대담하고 노골적인 수다들 그 자체가 "한 번의 섹스로 여자를 소유할 수 있다" 는 남자들의 성의식에 대한 강력한 도전장같다.

아름답기보다는 꾸밈없이 포착한 섹스씬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이재용 감독의 '정사' 는 여동생의 약혼자 (이정재) 와 사랑에 빠지는 서른아홉살 여성 (이미숙) 의 초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스토리는 전혀 새롭지 않다.

그러나 감독은 모노톤의 절제된 영상과 주인공들의 심리를 차분한 호흡으로 쫓는다.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지구과학실, 오락실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파격적인 정사장면은 관습을 뛰어넘는 욕망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준다.

여자들만이 섬세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두 남성 감독이 주시하고 이를 연출해 낸 이유는 영화가 다른 만큼이나 각기 다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의 임감독은 "남자들이 항상 성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도 강박관념이다.

남자들도 이러한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반문한다.

반면 이재용 감독은 "우리의 삶이 우리가 늘 원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되진 않는다는 것을 새로운 언어로 바꾸어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 이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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