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타는 빼고, 완성도는 곱하고 막장 밀어낸 착한 드라마의 성공 공식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찬란한 유산’의 주연 연기자들. 왼쪽부터 문채원·배수빈·한효주·이승기. [중앙포토]


SBS-TV 주말 특별기획 ‘찬란한 유산’ (극본 소현경, 연출 진혁)이 2009년 최고 인기 드라마 자리를 예약하며 28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찬란한 유산’ 은 시청률 40%를 넘기며 2009년 최고 시청률 드라마로 자리매김됐다. 무엇보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내용으로 높은 인기를 누린 점은 수치상 성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안방극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던 ‘막장 드라마’ 의 기세를 잠재운 ‘착한 드라마’ 라는 점에서 한국 드라마계에 긍정적인 자극제가 된 것이다.

‘찬란한 유산’ 은 기획 단계에선 이 정도로 크게 성공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 가 주류를 이루던 추세에 비춰볼 때 ‘찬란한 유산’ 은 시청자의 관심을 자극하기엔 심심해 보였다. 이승기·한효주·문채원·배수빈 등 주연 연기자들은 물론, 작가와 연출자도 명성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스타’ 는 아니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도 아니었다. 따뜻한 가족애와 심성 고운 처자의 성공 스토리가 훈훈한 감동을 안겨줄 소품 정도로만 전망됐다. 종영을 앞두고 ‘찬란한 유산’ 의 성공 의미를 살펴봤다.

성공 공식 1 매력적인 악녀의 등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드라마의 주류는 ‘막장’ 이었다. KBS-1TV ‘너는 내 운명’ , SBS-TV ‘조강지처클럽’ 과 ‘아내의 유혹’ 등 비현실적인 설정과 극단적인 내용으로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했던 드라마가 주류를 이뤘다. 현실적인 소재와 차분한 전개를 내세운 ‘착한 드라마’ 들도 꾸준히 나왔지만 시청자에게 어필하긴 쉽지 않았다. ‘막장 드라마’ 의 자극적인 재미에 길들여진 시청자의 입맛을 맞추기에 ‘착한 드라마’ 는 무미건조했다.

‘찬란한 유산’은 ‘착한 드라마’ 도 소재와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하면 시청자의 구미에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우선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는 ‘찬란한 유산’ 의 선한 재미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백성희(김미숙)와 유승미(문채원)는 숱한 거짓말로 고은성(한효주)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적절한 악역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성공을 향해 나가는 은성의 사랑스러움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찬란한 유산’ 을 만든 팬엔터테인먼트 김종식 대표는 “김미숙의 공이 가장 크다. 선한 이미지였던 김미숙의 악녀 변신 자체로 관심을 모을 만했다. 연기도 훌륭했다”고 매력적인 악녀 김미숙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응진 KBS 드라마국장은 “착한 드라마는 권선징악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지향한다. 매력적인 악역이 없다면 메시지 전달에만 그치게 된다”고 분석했다.

성공 공식 2 미스터리+기업 이야기

‘찬란한 유산’ 은 다양한 장르의 결합으로 ‘착한 드라마’의 약점인 내러티브의 단순함을 극복했다. ‘찬란한 유산’ 은 기본적으로 멜로 드라마의 구조를 지녔지만 추리극의 미스터리 요소와 경제 드라마의 성격을 적절하게 결합했다. 은성 아버지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 구조는 긴장감을 높였고, 설렁탕 회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업인의 경영 마인드와 경영권 다툼 등은 새로운 극적 재미를 더했다. 김종식 대표는 “실종된 아버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설렁탕 회사 경영권에 대한 힘겨루기 등으로 흥미 요소를 다양화한 게 주효했다. 착한 드라마의 단점인 단순한 구조에서 복합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여러 장르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시청자의 대리만족 욕구를 자극한 점도 ‘찬란한 유산’ 의 성공에 큰 몫을 담당했다. 주인공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며 힘을 얻고 싶어하는 시청자의 기대에 적절히 부응한 것이다. 윤고운 프로듀서는 “불황기에 시청자들은 드라마 캐릭터에 스스로를 투영하고 대리만족을 느끼려 한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일수록 대리만족의 강도는 높다. 현실적인 상황을 전제로 전개되는 착한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성공공식 3 캐릭터 맞춤형 연기자

‘찬란한 유산’ 은 제작비 규모와 스타 위주 제작 시스템 등 구조적 위기에 빠진 한국 드라마계에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겼다. ‘규모보다 내실이 중요하다’는 점과 ‘스타가 성공한 드라마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성공한 드라마가 스타를 만든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다. 현재 한국 드라마계가 겪고 있는 위기는 지나친 스타 의존도에서 야기된 과다 제작비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일반적이었다. 스타 연기자와 스타 작가, 스타 연출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개런티를 지급하다 보니 촬영에 사용할 제작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그 결과 극적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방송사에서 지급되는 제작비의 2~3배의 비용이 투입되니 제작사의 제작 여건 또한 악화될 수밖에 없다. 부족한 제작비를 해외 선판매를 통해 조달하기 위해서는 대형 한류 스타를 캐스팅할 수밖에 없고 이는 출연료 부담을 더욱 높이는 악순환을 만들었다. 이는 결국 한류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찬란한 유산’ 은 캐릭터에 가장 어울리는 연기자를 캐스팅하는 데 주력했다. 연기자의 인기나 명성보다 캐릭터 적합도에 초점을 맞췄다. 그마저도 제작비 한도 내에서 찾았다. 결과적으로 톱스타 캐스팅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승기·한효주·문채원·배수빈 등은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하며 작품 인기를 견인했고 스타로 도약했다. 결과적으로 작품이 스타를 만든 셈이다. 김종식 대표는 “스타 캐스팅에 욕심을 내지 않은 덕분에 제작비의 절대적인 부분이 완성도를 높이는 데 투입될 수 있었다. SBS가 지급한 제작비를 다소 초과하긴 했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쓰였다. 또한 손익구조는 플러스다”라고 말했다.

‘찬란한 유산’ 은 한류 스타 없이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좋은 조건으로 판매를 앞두고 있다.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 등 한국적인 정서를 다루는 점에서 신한류(新韓流)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작품을 통해 새로운 한류 스타가 탄생하는 점에서 한류의 선순환이라는 의미도 무시할 수 없다.

이동현 기자 kulkuri7@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