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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출산휴가 땐 창피한 생각도 … 동료 격려가 큰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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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12면

이영주 부장검사(왼쪽 셋째) 가족이 1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자택 앞뜰에서 포즈를 취했다. 맨 왼쪽은 시어머니. 최정동 기자

초등학생 때부터 그녀의 장래 희망은 ‘법조인’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데다 여자가 가사와 직장 일을 병행하려면 전문직종이고 상대적으로 평등한 법조계가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단다. 그녀는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대 법대 85학번 동기생과 결혼도 했다. 둘은 사법연수원에서 사랑을 키웠다. 그녀는 2남2녀의 막내, 남편도 3남2녀의 막내였다. 지금은 네 아이(2남2녀)의 엄마가 됐다.

아이 넷 낳아 기르는 이영주 대검 형사과장

이영주(42·사시 32회·1990년 합격) 대검 형사2과장 얘기다. 그녀는 지난 1월까진 사법연수원 교수였다. 당시 정기 인사에서 여검사로선 처음으로 검찰총장 참모조직인 대검의 과장이 됐다. 형사 2과장은 아동·여성·환경·식품·보건·의료 분야 수사와 관련된 정책을 세우고, 전국의 관련 사건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녀가 초임 때 6명이었던 여검사는 16년 만에 320여 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검사 1800명의 18%다. 일과 가정,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은 40대 초반 여검사의 사는 모습은 어떨까.

아이 키우며 소년범 처지 이해하게 돼
“자랄 때는 형제 네 명도 많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요즘엔 워낙 적게 낳는 게 추세여서 많게 느껴지는 것 같다. 늦게까지 일하다 집에 돌아와 잠자고 있는 애들의 얼굴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 애들이 힘이다.”

이 부장검사는 결혼 초에 애를 많이 낳을 생각이 없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살다 하나씩 생기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기저귀를 막 뗀 어린아이부터 초·중·고생까지 골고루 섞여 있다. 대학 입시, 사춘기의 고민, 초등학교 적응, 배변 훈련 등 다른 학부모들은 시간 차를 두고 겪는 고민을 동시에 안고 씨름을 하고 있다. 애들의 장단점도 한눈에 보인다.

고교 1년생인 장남 임성래(17)군은 책과 곤충을 좋아한다. 용돈을 털어 사슴벌레·거미 같은 걸 사다가 방에서 기른다. 중학교 2학년인 성은(15)양은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다. 야무지고 독립성이 강하다. 온 집안의 귀염둥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셋째 성지(7)다. 막내 성준(4)은 애교가 많다. 네 아이 중 신경이 많이 가는 건 사춘기인 성은양이다. 며칠 전에도 사소한 일로 나무랐더니 토라져 말도 안 한다고 했다. 이 부장검사는 “애들을 키워보니 어려서부터 사랑 받는 아이가 성격도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장검사는 둘째를 낳고 8년이 지나 셋째를 임신했다. 큰애와 막내는 13살 차이다. 키도 1m81㎝와 96㎝다. 터울이 많이 져 집에서는 첫째와 둘째를 ‘1군’, 셋째와 넷째를 ‘2군’이라고 구분해 부른다. 한번은 놀이동산에 갔는데 각자 취향에 따라 따로 놀다가 밥 먹을 때 만나게 되더란다. 각자 성장 단계가 달라 노는 것도 수준이 달라서였다.

좋은 점도 있다. 맞벌이 부부라 둘 다 귀가가 늦을 때 성래군과 성은양이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곤 했단다. 지지난해 칠순이 지난 시어머니의 도움도 컸다. 여자에게도 남자 못지않게 일이 중요하다는 게 시어머니의 지론이라고 한다. 젊어서부터 5남매를 홀로 키워 생계수단으로서의 여성의 일을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이 부장검사의 남편은 법무법인 한승의 임정수(42) 변호사다. 그는 판사를 10여 년 넘게 하다 2006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막내 성준이를 임신하고서였다. 혹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건 아니다. 육아비와 교육비가 많이 들긴 하지만 판사와 검사 월급으로 그럭저럭 키울 수 있었다. 넷째 아이를 갖는 것을 우리 인생의 새 출발 계기로 삼기로 했다. 남편이 계속 공직에 있었으면 살림이 빠듯했을 것이란 생각이 요즘엔 든다.” 이 부장검사의 말이다.

바쁜 가운데서도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묻자 “다른 것은 몰라도 아침에 직접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녀는 “소년범을 처리할 때 항상 부모가 왜 자녀도 제대로 관리를 못할까 생각했는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적·형식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던 데에서 벗어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장검사의 검사 생활은 임신과 함께 시작됐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93년 서울 남부지검에 부임했을 때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임신한 것을 티 내기 싫어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긴장해서 일하다 보니 입덧도 잊게 되더라. 임신 중 한센병 환자를 조사한 뒤 절도 혐의로 구속한 기억이 난다.”

가족은 출세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
훌륭한 검사가 되자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였다. 당시 남편 없이 혼자 사는 할머니를 상대로 남편 친구 2명이 사기를 친 사건을 맡아 직접 조사를 했다. 과거 수사 기록을 대출해 읽어가며 몇 달간 매달린 끝에 진상을 규명했다. 사기꾼 2명을 구속하자 할머니가 “한을 풀어줘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걸 보고 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이 부장검사는 순해 보이는 인상이다. 초년 검사 시절엔 일부러 강한 척, 권위주의적인 척 ‘위장’하기도 했단다. “피의자들이 내가 조사를 하면 목격자가 있는데도 무턱대고 부인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부장검사는 여성·아동문제 전문가다. 검사로서 보람찼던 일로는 2003년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으로 근무할 때 서울중앙지검에 어린이집을 설치하자고 제안해 설립을 끌어낸 것이다. 요즘도 직원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올려도 쉽지 않다는 얘길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직장 일과 육아 중 어느 게 더 소중한가.
“요즘엔 애 낳아 키우는 게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애들 크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출세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다.”

-검사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
“아이 넷을 낳으면서 네 번 출산휴가를 갔는데 휴가를 갈 때도, 업무에 복귀할 때도 힘들었다. 동료들에게는 일 부담을 줘서 미안했고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를 따라 잡고 업무의 공백을 메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
“넷째를 낳았을 때 창피한 생각도 들었다. 동료 선후배들의 따뜻한 격려가 힘이 됐다. 당시 법무부 대변인이었던 한명관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우리 동네로 찾아와 사표를 낸 남편까지 불러내 위로했다. 그만둘까 하던 마음이 돌아섰다.”

이 부장검사는 전문직 여성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려면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 후 복귀 시 차질없이 업무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아이들 사교육에 신경을 덜 쓰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검사라는 직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선입견일 뿐이라고도 했다. 그녀는 “부서 배치에서 성차별은 없어야 하겠지만 소통방식과 체력 등에서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내부 교육을 통해 서로 소통케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검사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깐깐해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지고 원칙에 충실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사인 엄마가 TV에서 보는 굵직굵직한 사건 수사를 다 하는 줄 알고 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눈치다. 말을 잘 안 들을 때 ‘엄마 회사 그만두고 너희들만 돌본다’고 겁주면 통한다. 키울 때 힘들어서 그렇지 키워 놓고 보면 애 많이 낳은 건 괜찮은 ‘투자’였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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