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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은근슬쩍 관객을 들어 올렸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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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04면

‘킹콩을 들다’가 개봉 3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았다. 외화 ‘트랜스포머’가 극장가를 휘모는 가운데 세운 값진 기록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중장년층 팬들도 모을 기세다. 상영시간 내내 극장에서는 웃음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 ‘킹콩을 들다’, 감독 박건용, 주연 이범수·조안 등

사실 이 영화의 첫 인상은 한편으로 뻔하고 한편으로 애매하다. 좌절한 국가대표 출신 역도선수가 시골에 내려가 생의 고달픔을 안고 있는 제자들을 인간적으로 감복시켜 역도선수로도 인생에서도 성장시킨다는 스토리다.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따돌림을 당했거나, 뚱뚱해서 짝사랑만 하는 등 한 가지씩 상처가 있다. 감독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시달리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이미 익숙해진 스포츠 영화의 전형 아니던가.

애매하다는 건 이범수·조안 등 주연 배우들이 초특급 일류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의 포지션 역시 굳이 노골적인 상업영화의 분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성이 돋보이는 독립영화 분위기도 아니라는 점에서다. 유머나 감동 역시 폭발적이지는 않다.

흠 잡기도 쉬워 보이는 영화다. 역도 운동복에 분비물 얼룩이 지는 장면을 굳이 클로즈업한 유머 감각, 혹은 중간에 쫓겨난 감독 선생님이 마지막 편지를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달려가다가 편지를 손에 쥐고 쓰러지는 장면의 신파성 역시 눈높이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이 쫓겨난 뒤 등장하는 다른 선생님은 팥쥐같이 못되기만 하고 아이들을 살벌하게 두들겨 패는 단면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조안을 비롯해 김민영·이슬비·이윤회·전보미·최문경 등 눈에 익지 않은 여자 배우들이 낑낑대며 역기를 들어 올릴 때마다 마음이 움직이는 걸 참기 힘들다. 그건 아마도 역기라는 스포츠의 우직함과 그 속에 담겨 있어야 할 땀 같은 것들에 대해 우리가 이미 올림픽 등을 통해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 자체의 스릴과 감동을 가져온 영화들은 그런 강점들이 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화면에 몰입해 역기를 들어올리는 연기자들의 연기 또한 그 감동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꼼꼼하게 쌓아올린 선생님과 제자들의 사랑과 우정 역시 관객과의 공감대를 끌어올린 또 다른 이유다. 한번 다져진 공감 덕분에 후반부에 약간 과잉인 듯한 뻔한 감정들도 거부감 없이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지나치게 웃기려고도, 지나치게 눈물을 쥐어 짜내려고도, 지나치게 진지해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부담 없이 빠져들도록 하면서 영화가 전달하려 하는 진심을 조용히 전한다. ‘애매하다’라고 느꼈던 영화의 약점은, 무언가를 유별나게 강요하지 않는 돋보이는 편안함으로 바뀌어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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