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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세르반테스의 후예들, 자본의 ‘말’타고 문학성 ‘창’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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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뉴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서면서 스페인 문단에는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 움직임은 문학사적인 사조도 아니고 흐름도 아닌 문학 외적의 현상인데, 이른바 밀리언셀러의 등장이다. 하비에르 세르카스와 루이스 사폰이 ‘세르반테스 상’을 비롯해서 ‘플라네타 상’이나 ‘알파과라 상’의 단골 수상자로 대변되는 유명 작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한 기존의 책 판매량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특히 루이스 사폰의 경우는 『돈 키호테』 이후의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현지에서 200만 부, 세계적으로 천만 부가 넘었다.

그들의 등장은 출판시장의 지형도를 깡그리 바꿔놓았다. 그렇다고 기존의 작가들이 숨을 죽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사이에도 90대 나이에 경제와 문학의 경계를 오가는 원로 작가 호세 루이스 삼페드로가, 현대소설의 대부 격인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지성과 철학을 겸비한 하비에르 마리아스와 안드레스 트라피예요가 다시 돌아왔다. 지독한 에로티시즘의 알무데나 그란데스도 돌아왔다. 메타소설의 문화인류학자 산체스 피뇰도 힘을 보탰다. 『다빈치 코드』가 강습하면서 자생적인 판타지까지 꿈틀거렸다. 라우라 가예고스가 『이둔』 시리즈로 청소년들 층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한번 불기 시작한 태풍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에는 역사소설을 내세운 변호사 출신 작가 일데폰소 팔코네스가 역사소설 『바다의 성당』이 밀리언셀러의 바통을 이어받으며 그들의 현상에 동참했다.

뉴밀레니엄 현상은 그 진원지가 정통문학 성향의 마드리드가 아닌, 바르셀로나, 엄밀히 말하면 바르셀로나의 출판그룹이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비에르 세르카스의 경우는 소설문학을 내세우는 ‘투스켓’ 출판사, 루이스 사폰은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인 플라네타 그룹의 ‘플라네타’ 출판사였다. 또한 그들의 작품은 스페인이 자랑하는 다양한 문학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독자와 서적상들이 주도하는 ‘올해의 책’은 놓치지 않았다.

반면에 이질적인 게 있다면, 각각의 장르이다. 판타지 열풍 같은 일방적 흐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르카스가 내전의 기사와 정보를 찾아 발로 뛰는 기록문학이라면, 사폰은 18세기 고딕소설의 원형을 재생한 것이다.

이들은 동일 장르인 『빛의 속도(La velocidad de Luz)』로, 『천사의 게임』으로 돌아와 자신들이 이끌어낸 현상이 일시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90년대부터 스페인 어권 출판계를 기웃거리는 필자는 감히 ‘밀레니엄 세대’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거대 자본이라는 배경과, 문학성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무기를 장착했다. 그중에서 루이스 사폰은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그동안 이베리아 반도 문학(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를 제외하면)이 동일어권인 중남미 작가들과는 달리 미국 시장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도 하비에르 세르카스를 제외하고는 이미 들어와 있다. 『바람의 그림자』에서 ‘잊혀진 책들의 무덤’속에서 가슴 아픈 과거의 아픔을 느꼈을 것이고, 『바다의 성당』에서 기층 민중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는 용서와 화해를 보았을 것이다.

정창(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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