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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 경영능력은 삼성…공사실적은 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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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건설업계의 맏형 자리가 바뀐 것인가. 대한건설협회가 30일 발표한 4만3183개 건설.설비업체의 2004년 시공능력 평가에서 삼성물산이 42년의 아성을 지켜온 현대건설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시공능력 평가는 건설업체의 공사실적.경영상태.기술력.신인도 등 네 가지 항목을 계량화한 것이다.

삼성물산이 토목.건축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건당 4조9854억원이며 현대건설은 4조358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위였던 대우건설은 4조2324억원으로 3위로 내려앉았다.

◇삼성은 탄탄한 재무구조=삼성물산의 1위 등극은 경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 삼성의 경영평가액은 1조9597억원으로 현대건설보다 1조4800억여원이나 많았다. 과거에는 시공실적이 중요시됐으나 외환위기 이후 평가제도가 바뀌어 재무구조 등의 비중이 커졌다. 보유자산이 많아 안정된 경영을 할 수 있게 됐고 이익이 많은 공사를 수주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4조6305억원에 영업이익을 2423억원이나 올렸다. 삼성 관계자는 1993년 질 경영을 도입한 이래 외형 중시 경영을 버리고 기술혁신과 내실에 힘써 온 결과 하이테크 공장분야는 세계 최다 실적을 갖게 됐으며, 50층 이상 초고층빌딩 건축에서는 세계 6위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이원익 전무는 "시공실적에서는 아직 현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기술력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고, 특히 경영 상태의 안정성은 업계 최고"라고 말했다. D건설 관계자는 "어떤 업종이든 경영상태의 중요성은 이미 외환위기 때 입증됐다"고 전했다.

◇현대는 실적과 기술력=경영 평가를 뺀 공사실적과 기술력, 신인도 등에서는 현대건설이 앞선다. 지난해 현대건설의 매출은 5조1459억원으로 삼성물산과 대우건설보다 6000억~9000억원 정도 많다. 외형으로 따지면 아직 국내 최대 건설업체다. 해외건설 분야에서는 거의 독보적이다.

따라서 경영평가를 뺀 분야에서는 여전히 1위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현 제도에 불만이 많다. 현대건설 이종수 전무는 "시공능력이란 말 그대로 좋은 품질의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뜻한다"며 "실적이나 기술력 등이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데 경영상태에 배점이 더 많은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P건설 한 임원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상태가 회사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지만 한국 건설산업을 이끌고 있는 현대건설의 입지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패러다임은 바뀌어야=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량 부도 사태를 겪었던 건설업으로선 외형 성장보다 내실의 중요성을 부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시공능력 평가에서 재무구조 등 경영상태 비중이 커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부도 위험이 없는 기업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정부가 외환 위기 이후 평가 기준에서 경영상태 비중을 높인 것도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춘 후에 실적을 올리는 패턴으로 물꼬를 트기 위함이었다.

대한건설협회 최윤호 본부장은 "서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 업체가 앞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갖느냐가 중요하다"며 "재무구조도 더욱 탄탄하게 쌓으면서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더 키워 외국 대형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외형 위주 성장에 익숙하다 보니 현재 평가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건설교통부는 8월 중 시공능력평가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업계의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시공능력 평가=발주자가 공사를 할 적정한 건설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실적 등을 평가해 공사수행 금액을 매년 공시하는 제도. 8월 1일부터 이듬해 7월 31일까지 적용한다. 62년부터 도급순위제로 시행해 오다 97년 이후 경영과 실적 등을 종합 평가하는 시공능력평가제로 바뀌었다. 42년간 현대건설이 1위를 고수해 왔다.

황성근.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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