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B 의장 그린스펀 한마디에 뉴욕증시 벌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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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장의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말 한마디에 병석의 노인처럼 무기력 증세에 빠졌던 뉴욕 증시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8일 (현지시간) 뉴욕 증시의 다우 지수는 하루 상승폭으론 사상 최고인 380.53포인트 (4.98%) 나 뛰어올라 단숨에 8, 000선을 회복했다.

미 증시의 소위 '그린스펀 효과 (Greenspan Effect)' 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날이었다.

그가 지난주 금요일 캘리포니아의 버클리 대학에서 한 발언은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만 번영의 오아시스로 남을 수는 없다" 는 정도였다.

금리인하를 시사했다고는 하나 그리 명쾌한 내용이 담겨있는 것도 아니다.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미 경제가 아직 탄탄하기 때문에 금리를 그리 쉽게 내릴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상황이다.

그는 96년 12월에도 미국 주가에 대해 '비이성적 활황 (Irrational Exuberance)' 이라고 언급, 주식시장을 한바탕 흔들어 놓은 적이 있다.

그의 발언은 늘 월가의 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재료로 꼽힌다.

증시를 움직이는 가장 큰 변수가 금리이고, 그가 통화.금융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인하되면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채권보다 주식이 조금이나마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미국에서는 할부금융.신용카드의 이용이 보편화돼 금리 조정은 실생활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국제적으로도 미국의 금리인하는 금융위기 확산을 막는 최대의 처방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따라서 그린스펀의 이번 발언은 그 자체로 별 것 아닐 지 모르나 국제 금융시장에 주는 심리적 효과는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은 "세계 경제가 리더십 부재로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는 가운데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시장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린스펀 효과' 를 낳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의 이은모 과장은 "그린스펀 효과는 FRB의 '경제 파수꾼' 으로서의 확고한 위상과 그린스펀에 대한 월가의 높은 신뢰도가 더해져 나타나는 것" 이라고 분석했다.

FRB의 사전 예방적인 금리 조정이 지금까지 미 경제를 극심한 경기변동이 없는 '안정적 성장' 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린스펀은 탁월한 정치력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10년 넘게 이를 차질 없이 지휘해 왔다는 것이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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