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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막을 내려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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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세 번째와 네 번째는 73년 8월의 납치 사건이다. 72년 10월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했고 일본에 있던 DJ는 망명했다. 이후락의 정보부는 도쿄의 호텔에서 DJ를 납치했고 공작선에 태워 서울로 끌고 왔다. DJ는 호텔방에서 대형 가방 등이 발견된 것을 놓고 “나를 토막 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선원들이 나의 손과 발에 무거운 걸 매달았다”며 자신이 수장(水葬)될 뻔했다고 말해 왔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80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DJ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것은 감옥의 총살 사건이다. 실제로 많은 이가 그렇게 죽었다. 교통사고는 관련자의 증언이 다르다. 트럭 운전사는 자신은 정권과 관련이 없으며 단순한 빗길 사고였다고 말해 왔다. DJ 지지자인 허경만 전 전남지사는 당시 검사였는데 사건을 음모가 아니라 과실(過失)로 처리했다. 그가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말한 적은 없다. 도쿄 납치는 DJ에게 정말로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정보부가 이웃나라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런 공작을 저지른 건 독재 정권의 야만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DJ의 주장처럼 정보부가 토막을 내거나 수장하려 했는지는 확인된 게 없다. 정보부는 그저 DJ를 서울에 데려다 놓으려 한 것일 수 있다. 80년의 사형선고는 공식적이고 명백한 생사의 고비였다. 그러나 아무리 살벌한 5공 초기라 해도 권력이 국내외 압력을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할 거라 믿은 이는 많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5대 생환’ 주장의 허실이다.

어쨌거나 DJ는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국민의 곁에 있어 온 상존(常存)의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를 떠난 적이 거의 없다. ‘대통령 김대중’은 5년이지만 ‘정치인 김대중’은 50년이다. 그는 대표적으로 박정희와 싸웠고 핍박을 받았다. 국가의 실적으로나 국민의 평가로나 역사의 승리자는 박정희다. 그러나 DJ가 육체적 고통을 통해 국민에게 ‘민주화’라는 단어를 심어 놓은 공적도 지울 수 없다. 그런 DJ가 지금 ‘여섯 번째’ 사신(死神)과 싸우고 있다. 83세의 DJ는 이번의 사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DJ는 누가 뭐래도 현대사의 거인이자 국가 원로다. 그런 인물이 국민에게 상처와 회한을 남겨 놓고 떠나가는 건 국가적 불행이다.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며칠 전 DJ는 이명박(MB) 정권이 독재라며 국민에게 봉기를 촉구했다. 물론 DJ의 좌절감과 분노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북 화해가 없던 일로 돼 버리고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데에 충격을 받았을 수 있다. 그리고 MB가 잘못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국민에게 근거 없는 ‘갈등과 봉기’를 유산으로 남기는 건 전혀 거목답지 않다. MB도 그저 전직들처럼 잘사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보려는 한 명의 대통령이다. 방법론이 다를 뿐 그는 독재자도, 북한 파괴론자도 아니다. 현대사에 새긴 음각(陰刻)의 깊이로 보면 노무현은 DJ의 막내아우뻘이다. 그런 막내도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 했는데 맏형이 갈등과 분열을 남기고 떠나가서야 되겠는가. DJ는 여섯 번째 사신을 패대기치면서 보기 좋게 병상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남긴 국가적 갈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해 놓아야 한다. 다섯 번 자신을 구했다는 하나님이 그의 호흡을 살려낸 것도 그런 소명을 위한 게 아닐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