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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진화의 기적, 41억 명 호모 모빌리쿠스 시대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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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20면

크기는 더 작게, 기능은 더 많이, 사용시간은 더 오래. 20여 년 전 탄생한 휴대전화가 진화해온 길이다. 1983년 미국 모토로라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휴대전화 ‘다이나택’은 휴대하고 다니기엔 너무 거북한 물건이었다. 사이즈(127㎜×228㎜×45㎜)가 벽돌보다 큰 데다 무게는 1.3㎏이나 나갔다. 배터리는 10시간 충전해도 고작 30분밖에 통화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동 중에 통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받았다.

휴대전화 자유를 꿈꾸다

국내 휴대전화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88년. 그해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 7월 수도권과 부산 지역에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 서비스가 도입됐다. 앞서 84년에 선보인 카폰(차량 전화)과 함께 바야흐로 이동통신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비스 초기 휴대전화는 부의 상징이었다. 한국에서 88년 시판된 휴대전화 단말기(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 가격은 400만원대. 마이카 붐을 불러일으킨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 가격이 500만원이었으니 웬만한 부자 아니고선 휴대전화를 장만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서비스 도입 첫해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자는 784명에 그쳤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대중화는 어느 제품보다 급속히 이뤄졌다.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현 LG전자) 등 국내 업체가 잇따라 휴대전화 국산화에 성공한 데다 반도체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휴대전화의 소형·경량화 경쟁이 불붙으면서 가격이 내려간 덕분이다. 휴대전화 업체의 다이어트 경쟁은 두께 6.9㎜, 무게 60g대의 초슬림 제품까지 탄생시켰다.

휴대전화의 진화는 서비스의 진화와 궤를 같이해 왔다. 특히 96년 1월 디지털 방식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서비스가 이뤄지면서 국내 휴대전화의 보급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99년 SK텔레콤이 무선인터넷 포털(현 네이트)을 선보이면서 휴대전화는 엔터테인먼트 수단으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무선인터넷을 통한 게임·음악·동영상 서비스 등이 이뤄지면서 멀티미디어폰이 쏟아져 나왔다.

SK텔레콤이 자회사 TU미디어를 설립해 2005년 5월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듬해 12월엔 KBS·MBC·SBS 등이 참여한 지상파 DMB 서비스까지 가세하면서 TV를 볼 수 있는 모델이 잇따라 나왔다. 2007년엔 동영상 정보까지 주고받는 WCDMA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상대방의 동영상을 서로 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영상통화폰이 인기를 끌었다.

2009년 6월 말 현재 국내 휴대전화 서비스 가입자 수는 4700여만 명. 인구의 96%가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생활화한 새로운 인간형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 시대가 온 것이다. 휴대전화 없이는 업무를 못 보거나 생활이 안 된다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은 휴대전화 강국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던 휴대전화에 멀티미디어 기능을 접목시켜 세계 호모 모빌리쿠스의 각광을 받고 있다. 두 회사는 카메라폰, MP3폰, DMB폰, 3D 입체 게임폰 등 신제품 개발을 선도하며 글로벌 각축전에서 잇따라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올 1분기 세계 시장에서 핀란드의 노키아(점유율 38.1%)에 이어 삼성전자가 2위(18.7%), LG전자가 3위(9.2%) 업체로 올라섰다. 미국 모토로라, 일본 소니에릭슨, 독일 지멘스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차례차례 물리친 결과다.

한국의 지난해 휴대전화 수출액은 344억3400만 달러. 석유화학제품(366억2700만 달러)과 선박(344억7200만 달러)에 이어 3위다. 자동차 나 반도체 보다 앞선다.요즘 휴대전화 시장엔 터치폰과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다. 버튼을 누르는 대신 액정화면을 눌러 조작하는 터치폰과 소형 컴퓨터 못지않은 다양한 기능을 하는 스마트폰 신제품이 연일 시장에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 진화의 끝은 어디일까. 궁극적으로는 인체 각 부위에 반도체를 이식하는 단계까지 진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손가락 끝에 키보드칩, 눈에 디스플레이칩, 귀엔 이어폰칩, 입엔 마이크칩을 이식해 휴대전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정보·통신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진정한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강성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인체통신개발팀장은 “미국과 일본에선 각종 센서나 통신칩의 임플란트(인체 매립)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관련 기술의 표준화까지 추진하고 있는 만큼 생체 이식폰도 머잖아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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