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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꼼꼼함, 그의 인맥과 수첩은 알고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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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05면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2일 오후 10시. 민주당 박지원(사진) 의원은 보좌진에 서류뭉치를 줬다. 거기엔 천 전 후보자 부부와 사업가 박모씨 부부가 지난해 2월 7일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물품을 구입한 내역이 담겨 있었다. ‘A 면세점 핸드백 ○○○○달러, B 면세점 향수 ○○○ 달러’ 식으로 면세점 이름과 그곳에서 산 품목, 가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서류였다. 박 의원은 청문회에서 출입국 기록과 면세품 구매 내역 일부를 공개하면서 천 전 후보자가 고가 아파트 구입과 관련해 돈을 빌려준 박씨와 함께 골프여행을 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천 전 후보자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으나 다음 날 오후 박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자 청와대는 경질을 결심했다. 천 전 후보자의 낙마로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엉터리라는 문제가 다시 노출됐고, ‘검찰 쇄신’ 카드로 국정장악력을 높이려던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도 흐트러졌다.

청문회 저격수의 조건

그런 가운데 검찰의 관세청 내사가 시작됐다. 박 의원이 입수한 천 전 후보자의 개인 정보가 관세청에서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소중한 사생활 정보를 유출하는 건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강조하지만 박 의원은 “내사는 의원의 의정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난한다. 검찰은 정보 유출자를 색출해 처벌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박 의원과 민주당은 그걸 정치적 이슈로 삼을 태세다.

“99%도 모자라, 물증 가져와라”
청와대도 잘 몰랐던 천 전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박 의원은 어디서 구했을까. 본인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비서들은 “박 의원밖에 모른다”고 말한다. 박 의원은 청문회를 앞두고 관세청에 천 전 후보자 부부의 면세품 구입에 대한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 관세청은 거부했으나 천 전 후보자에 대한 핵심 정보는 결국 박 의원 손으로 들어갔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이 입수한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면세품 구매 당사자나 관세 당국, 면세점 업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개인 구매기록을 확보했기 때문에 관세청에서 정보가 나간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국회 주변에서 나온다.

박 의원은 천 전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도 알아내 청문회에서 터뜨렸다.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주민등록기록을 검토하면서 위장전입 의혹이 있다고 판단한 박 의원은 교육당국에 천 전 후보자 아들의 학적 변경 내역을 달라고 요청했다. 당국은 자료를 주지 않았으나 박 의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박 의원의 청문회 준비는 아주 철저했다고 한다. 여러 제보를 일일이 확인하기 위해 의원실 보좌진 외에 다른 사람들도 활용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박 의원 측 관계자는 “박 의원이 ‘99%도 부족하다. 100%가 아니면 안 된다. 상대는 검찰이다. 틀리면 우리가 당한다’며 철저한 사실 확인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천 전 후보자 아들이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을 확인한 것도 그런 노력의 결실이다. 청문회에서 결혼식 장소를 묻는 질문에 “조그만 교외”라며 넘어가려 한 천 전 후보자를 “6성급 고급 호텔(W 호텔) 야외에서 하지 않았느냐”며 반박할 수 있었던 건 청첩장을 확보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12개 신문 정독
박 의원이 놀라운 정보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건 폭 넓은 호남 인맥을 잘 관리해 왔기 때문이라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는 김대중(DJ) 정권 때 청와대 대변인과 비서실장, 문화관광부 장관 등 요직을 지냈다. DJ의 총애를 받았던 그는 호남 출신 공무원들을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인맥이 각 부처와 정보기관, 경찰 등에 두루 퍼져 있는 만큼 박 의원의 정보력은 민주당에선 으뜸이라고 한다. DJ정권 시절 야당(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국가정보원의 각종 기밀을 입수하고 폭로하면서 DJ 정권을 괴롭혔던 정형근(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전 의원의 정보력에 견줄 정도라는 얘기다.

박 의원의 성실성도 정보력의 원천으로 꼽힌다. 그는 ‘김대중 평화센터’ 로고가 박힌 조그만 수첩을 늘 들고 다니며 중요한 걸 꼼꼼히 기록한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12개 신문을 정독하고, 각계 인사들과 점심·저녁 식사를 하면서 정보를 얻는 걸 즐긴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귀가해도 비서들의 e-메일 보고를 꼭 확인하고 잔다고 한다. 한 측근은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국정경험을 한 데다 부지런하기 때문에 정보의 맥을 정확하게 짚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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