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패트롤]현대차 사태 '여진강도' 촉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요즘 '사오정 시리즈' 가 유행이다. 귀가 잘 안들리는 사오정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 이 그 사실을 숨긴 채 앞 뒤 안맞는 발언을 연발,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내용이다.

염불보다 젯밥에만 신경쓰는 정치권과 일관성 없는 정부의 최근 행태를 사오정 시리즈로 꾸미면 우스꽝스런 얘기들이 얼마나 많이 나올 까. 혼란 속에서 맞는 이번 주에는 크고작은 현안들이 여럿 예정돼 있다. 우선 주초에는 기아 자동차 입찰 결과가 공개된다.

특히나 4개 참여 업체의 자격 여부를 놓고 막판 논란이 일고 있어 결과가 사뭇 주목된다.

유찰되든 낙찰자가 정해지든, 이는 국내 자동차 산업은 물론 재계의 최대 현안인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그리고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계가 8월말까지 마무리, 정부측에 전달키로 한 '10대 업종 구조조정 계획' 이 어떤 모습이 될지도 관심거리다.

정부는 미리부터 '내용이 미흡할 경우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 고 벼르고 있어 재계가 어느 선에서 수위를 맞출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밖에도 조건부승인 7개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구조조정도 이번 주에 전기 (轉機) 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사안은 진통 끝에 지난 주 일단락된 현대자동차 사태의 파문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이다.

불행스럽게도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사태 이후 곳곳에서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증폭되는 등 이미 원칙이 무너진 데 따른 후유증은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정치권이 스스로 '원칙 지키기' 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 이상, 앞으로 각계의 '집단 이기주의' 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외환위기 이후 온 국민의 고통을 대가로 국제사회에서 '최소한의 신뢰' 를 얻는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한국 경제는 어느 곳 하나 밝은 구석이 없다.

7월 현재 1백65만명으로 위험 수위에 이른 실업자, 2분기 - 6.6%의 성장률, 연4개월째 뒷걸음질 치는 수출, 붕괴되는 산업기반…. 게다가 국제적인 여건도 좋지 않아 앞으로 상황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판에 정부.정치권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어렵사리 도입된 정리해고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 시키는 우 (愚) 를 범했고 이는 지금까지의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지않아도 미심쩍어 하는 외국투자자들의 눈길은 더욱 확실한 불신으로 돌아섰고, 우리는 경제 회생에 필수적인 국제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해 더욱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게 됐다.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고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젠 어떤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려 할 지 궁금하다.

김왕기 산업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