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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문명충돌의 불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헨리 키신저는 국내정치가 안정돼 있으면 나라 안의 결속을 위해서 모험적인 외교정책을 펼치고 싶은 유혹은 최소화된다고 말했다.

국내정치에서 궁지에 몰린 지도자는 대외적으로 긴장을 고조시켜 여론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싶어한다는 의미다. 클린턴이 테러를 응징한다고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 것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선호한 이런 무단 (武斷) 주의적 외교의 전통과 일치한다.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아이젠하워에서 부시에 이르기까지 모두 18번의 군사개입을 했다.

베트남전쟁때의 4번을 제외하고는 군사개입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올라갔다.

한번의 군사행동에 지지율은 평균 4.7% 오른다는데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여 걸프전쟁을 일으켰을 때는 그의 인기가 19%나 뛰었다.

93년 7월 37%로 저조하던 클린턴의 인기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공습으로 44%로 올랐다.

그 뒤 다시 40% 아래로 떨어졌던 클린턴의 인기는 94년 8월 아이티 침공으로 9% 상승했다.

외교는 제3의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고, 전쟁은 제3의 수단에 의한 외교의 연장 (클라우제비치) 이라는 말을 묶어 생각하면 클린턴의 이번 무력행사는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이 수단과 아프가니스탄의 목표물을 공격한 20일은 르윈스키가 두번째로 대배심에 불려나가 증언을 한 날이었다.

언론은 르윈스키 취재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다.

클린턴이 의도했거나 말거나 언론은 밖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이 대통령의 스캔들과 관계없이 작은 나라를 상대로 패권주의적 실력행사를 한 '전과' 는 한둘이 아니다.

70년 칠레의 아옌데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동 (銅) 을 국유화하여 미국의 이권을 위협했을 때 닉슨정부는 중앙정보국 공작으로 아옌데를 살해하고 우익정권을 세웠다.

79년 카터정부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좌파정권의 경제개혁을 경제봉쇄로 저지했고, 83년 레이건정부는 군대를 그레나다에 상륙시켜 좌파정권의 수뇌를 체포했다.

89년 부시가 해병대를 파나마에 파견하여 그나라 실권자 노리에가를 붙들어 미국으로 압송한 것은 미국에 의한 힘없는 나라 주권유린의 압권이었다.

94년 클린턴이 미군을 아이티에 상륙시킨 것도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외국에 대한 이런 일련의 무력개입과 이번 수단.아프가니스탄 공격이 다른 점은 앞의 사태들의 동기가 미국의 국가이기주의였던데 반해서 클린턴의 경우는 테러 응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대통령 개인의 위기탈출을 위한 비상조치라는 의혹이 짙다는 점이다.

테러는 반인류적인 범죄행위다.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행위는 극악하고 잔인하다.

테러집단은 반드시 테러를 당하는 쪽의 이성 (理性) 을 믿고 행동한다.

문명사회의 상식을 악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호한 테러응징은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지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적 무력행사에 대해서는 지지가 주저된다.

미국은 폭격당한 수단의 시설이 화학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은 폭격당한 시설을 와서 보라는 수단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데 현장조사 결과 그것이 제약공장으로 밝혀지면 미국의 국제적인 입지는 대단히 어려워지고 우방들까지 딜레마에 빠진다.

지금부터 예상되는 테러와 응징과 테러의 악순환도 심각한 문제다.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를 위해서 순교할 각오가 돼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구미 (歐美)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문명세계에 살고 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그들에게 미사일 공격이 효과적인 테러대책인지도 의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예언대로 이게 정말 서로 다른 문명간 충돌의 한 단면은 아닌지 세기말적인 불안 같은 걸 느낀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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