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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은 숫자가 아닌 魂의 싸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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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국내 1위 소프트웨어업체 티맥스소프트의 관계사인 티맥스코어가 7일 컴퓨터 운영체제(OS) 프로그램인 ‘티맥스 윈도9’를 공개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세계 시장을 90% 넘게 독점하고 있는 OS 시장에 토종 업체가 대항마로 나선 것이다. 이날 시연회를 주도한 박대연(53·사진) 티맥스소프트 회장은 성공을 자신했다. 그는 과연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될 것인가, 아니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될 것인가.

“토종 OS의 등장은 한국 산업사에서 조선이나 자동차, 반도체 산업 진출에 비견되는 위대한 도전이다.” “티맥스 윈도와 오피스로 2012년까지 세계 OS 시장의 10%를 차지할 것이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티맥스 윈도9’ 시연회. 이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한 박대연 회장은 거침이 없었다. 이 자리엔 소프트웨어 전문가와 컴퓨터에 관심 있는 일반인 등 1만여 명이 참석했다. 박 회장은 “이날만큼 뜨거운 박수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국산 OS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우려로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티맥스 윈도에 내장된 미디어 플레이어를 통해 구동된 소녀시대 동영상은 자주 끊겼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시연은 로딩에만 2~3분이 걸렸고 게임 도중 작동이 중단됐다. 설익은 밥을 상에 올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고 기술을 자부해오던 박 회장으로선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9일 오전 경기도 분당에 있는 티맥스소프트 연구개발센터에서 만난 박 회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예상했던 에러”라며 “티맥스 윈도의 실체를 보여준 것에 의미를 부여해 달라”고 주문했다.

-출시한 지 10년도 더 된 스타크래프트가 제대로 구동되지 않고 소녀시대 동영상은 중간에 끊기기도 했다. 제품 완성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예상했던 사고다. 시연을 서둘러서 생긴 문제다. 애초에는 MS윈도 기반과 티맥스 윈도 제품을 가지고 스타크래프트 대전을 기획했다. 그러나 아직 1%가 미완인 상태였다. (제품이 출시되는) 11월 전까지는 보완할 수 있다.”

-3개월 남짓 만에 보완이 가능한가.
“단순 에러를 찾는 일이다. 앞으로 3개월간 티맥스의 모든 역량을 동원할 것이다. (100% 보완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점이) 0.1%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 0.1%가 OS에서는 치명적 결함 아닌가.
“티맥스로서는 첫 번째 OS 제품이다.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단순한 에러다.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사실 내부에서는 시연회를 8월 말로 늦추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연구개발 인력들이 너무 지쳐 있었다. 이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연 행사가 내부용이라는 얘긴가.
“그런 측면도 있다. 지난 4년간 OS 개발에 몰두하느라 연구원 중에는 이혼을 한 경우도 있다. 게다가 회사가 OS 개발을 선언하고 난 뒤부터 ‘무슨 일을 하는지 실체가 없다’ ‘박대연은 제2의 황우석’이란 루머에 시달렸다. 티맥스 윈도에 대해 안티 세력만 99%였다. 내부적으로는 용기를 북돋우고, 외부적으론 실체를 보여주는 게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는 (시연회는) 성공했다. 실제로 시연을 하고 나서 안티 세력과 지지 세력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11월엔 안티 세력이 5~10%로 줄어들지 않겠나. 일본과 중국에서도 1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용기를 얻었다.”

-어쨌든 시장 평가는 미지근하다.
“나를 허풍쟁이라고 불러도 좋고, 돈키호테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인정한다. 그러나 이 일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11월엔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오픈소스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티맥스 윈도9를 ‘와인(wine)’의 아류쯤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와인은 리눅스에서 윈도용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개발한 공개 OS를 가리킨다). 그런 것은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뭐 하러 연구개발비로 수백억원을 들였겠나. 우리는 MS윈도 흉내를 낸 것이 아니라 OS 자체를 새로 만든 것이다. 티맥스의 OS 연구개발 인력만 350명이 넘는다. 어떻게 이들 모두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수 있나? 그랬다면 벌써 인터넷에 떴을 것이다.”

박 회장은 “중요한 것은 실체가 있다는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티맥스 윈도가 최소한 허깨비는 아니니 조금 더 지켜봐 달라는 주문이다. 행사 얘기를 조금 더 물어봤다. 이날 시연회엔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이용경 창조한국당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도 많이 참석했다.

-시연회 때 정부 인사가 유난히 많았다.
“강만수 위원장은 평소 소프트웨어 산업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더구나 ‘747 성장론’을 기획한 분 아닌가. 이용경 의원,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은 소프트웨어산업 경쟁력위원회 공동 위원장이다.”

-정부 조달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
“전혀 아니다. 어디서든 물건이 좋아야 통하는 것 아닌가. 포텐셜이 있어야 정부 지원도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겠나.”

-시연회가 끝나자마자 채용공고를 냈다.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서다. 내년에 해외법인 10개를 세울 것이다. 2011년에는 30개가 추가된다. 곧 전 세계로 나가야 할 인력이 필요한데, 이들을 채용해 교육하려면 1년은 걸린다.”

-실탄은 넉넉한가. 지난해 매출이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로 1000억원을 넘었지만 영업이익(14억원)은 오히려 전년보다 줄었다.

“부채가 1500억원이다. 가용 현금은 100억원가량 된다. 매출에 비해 부채가 많은 것은 맞다. 자금 사정이 빠듯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크게 우려하지는 않는다. 연구센터 건물, 판교 부지 5000평 등 부동산도 있다. 그리고 OS 비즈니스는 어디까지나 ‘원 오브 뎀(one of them)’이다. 미들웨어로만 연 300억원 수익을 낸다. OS 개발 쪽에 월 20억원가량 투입하고 있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다. 이쪽에서도 OS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단말 시스템을 개발해 월 5억~10억원쯤 매출이 일어난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거인’ MS는 티맥스 앞에 놓인 장벽이다. MS는 오는 10월께 차기 OS인 ‘윈도7’을 출시할 계획이다. 한글판은 11월 초에 나온다. 구글의 모바일 OS인 ‘안드로이드’도 미니노트북 시장에서 MS와 경쟁을 선언했다. 티맥스로서는 시장 진입 초기부터 거센 파도를 만나는 셈이다.

-구글도 OS 시장에 진출한다.
“오픈소스를 조금 업그레이드해 올려 놓은 수준 아니겠나. 게다가 PC보다 기술 요구 수준이 낮은 미니노트북용 아닌가. 구글이라는 브랜드를 업고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우리 기술의 5분의 1도 안 된다.”

-올해 티맥스 윈도 매출이 얼마나 일어날 것 같나.
“잘해야 5억~10억원일 것이다. 윈도는 PC 말고도 현금입출금기(ATM), 도로 광고판, 개인휴대단말기(PDA) 등에 다양하게 적용되는 구동 방식이다.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만 생각하지 말아 달라.”

-MS 쪽에서는 ‘윈도’라는 브랜드를 쓰는 것이 거슬리는 눈치인데…. 이미 상표권
침해 관련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도 법률적인 검토를 했다. 특허청에도 문의했다. 정확히 따져 ‘MS윈도’나 ‘MS오피스’가 등록상표다. 그리고 ‘윈도’는 애플이 먼저 사용한 용어다. 문제없다. 화면 구성에서 시비를 걸면 모를까.”

박 회장은 “그래도 MS가 시비는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석하고 시비 거는 것, 그렇게 귀찮게 한 다음 M&A를 시도하는 것이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수순 아니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시빗거리는 없을 것이다. 엔진이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MS는 전체 인력 9만 명 가운데 40%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티맥스의 OS 개발 인력은 350명이다. 단순 비교해도 100대 1의 전쟁이다.
“(기다렸다는 듯) 소프트웨어는 인원 대비 효율이 통하지 않는 산업이다. 아마도 인력 투입 대비 산출 논리가 통하지 않는 유일한 산업 아닐까. 얼마나 혼(魂)을 불어넣느냐가 중요하다. 소프트웨어는 ‘자세의 문제’다. 안정적인 직장과 ‘내 지분이 들어간 내 회사’에서 나오는 퍼포먼스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나는 연구원들에게 ‘꿈속에서 프로그램이 보이면 문제다. 꿈속에서 에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자세로 일하면 100대 1의 싸움은 문제 되지 않는다. 실제로 MS윈도 개발의 핵심인력은 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테스트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인력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연구 실적을 성공 사례로 들기도 했다. “미국 AT&T가 개발한 미들웨어 ‘턱시도’는 5명이 20년간 개발한 제품이다. 나는 비슷한 제품을 혼자서 1년6개월 만에 개발했다. 이때도 나한테 허풍쟁이라고 하더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AIST 교수 시절인 1997년 티맥스소프트를 세운 박 회장은 ‘제우스’ 등 미들웨어와 국산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티베로’를 개발해 한국 시장 1위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도 사내에서 ‘교수님’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해 12월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거의 매일 분당 연구센터에서 근무한다. 그는 ‘8-10맨’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확히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해서 그렇단다. 연구센터 근무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연구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티맥스의 미래는 기술 개발에 있다”고 대답했다.

-부도설, 인수합병(M&A)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우리 기술을 사고 싶어하는 회사가 많다. 모두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흘러나온 얘기다.”

-벤처 캐피털 투자도 받지 않았다.
“투자 유치를 위한 설명회는 하지 않는다. 돈이 아쉬워서 을(乙)의 입장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밖에서 자금을 받으면 헝그리 정신이 사라진다. 이건 굉장히 중요하다.”

-왜 OS 개발에 나섰나.
“미들웨어만 잘해도 먹고사는데 왜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하느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것은 소프트웨어 시장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라클은 기업 시장에서, MS는 PC 시장에서 절대 강자다. 만약 오라클이 DBMS 시장을 공략하면서 ‘한국에서 미들웨어는 공짜로 공급하겠다’고 해봐라. 살아남을 수 없다. 게다가 OS는 데스크톱·노트북 등 모든 PC에 탑재되는 필수 소프트웨어다. 세계 시장 규모가 210억 달러에 이른다.”



박대연 회장은
1956년 전남 담양 생. 빈농의 장남으로 운수회사에서 13세부터 사환으로 일하면서 광주상고(야간)를 졸업하고 한일은행 전산실에서 근무하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했다. 32세 때 미국으로건너가 오리건대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한 뒤 남가주대(USC)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 제어계측공학과 교수, KAIST 전자전산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97년 6월 자본금 1억원으로 티맥스소프트를 창업한 뒤 주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해 왔다. 2007년 4월 교수직에서 물러나 회사 일에 전념하고 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오느라 지난 25년간 영화도, 드라마도 한 번 보지 않은 ‘독종’이다. 6대 장손인데 큰일을 하기 위해 결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단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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