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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김정동 지음'하늘아래 도시 땅위의 건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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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6면

목원대 건축과 교수이자 문화재 전문위원인 김정동 (50) 씨의 해외여행 목적은 남다르다.

어디를 가든 우리들이 남긴 족적을 찾는데 열심이다. 관련자료 목록 작성에도 평소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

신간 '하늘 아래 도시 땅 위의 건축' 은 이같은 여정의 결실이다 (전2권.가람기획刊) .지난해 나온 '일본을 걷는다' 가 일본에 흩어진 건축물을 통해 한국 근대사의 명암을 성찰했다면 이번에는 시야를 넓혀 아시아와 유럽.북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문제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항상 우리와 연관성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책에 실린 33꼭지의 글은 겉으로는 건축 기행문이지만 속으로는 역사 에세이를 닮았다.

'역사적 건물은 그 시대의 교과서' 라는 생각에서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는 동시에 무분별한 개발이 판치는 현재를 비판하고 있다.

중국의 베이징. 흔한 관광객이라면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의 위용에 감탄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화대혁명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유적을 파괴한 이념의 맹목성을 먼저 개탄한다. 이어 구한말 우리 공사관 건물터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고종의 내탕금 (內帑金) 14만원을 들여 매입했던 건물. 당시 고종의 월급이 3백5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다.

공사관은 나중에 미국으로 넘어갔으나 우리는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지금쯤은 그 전후의 시말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베이징 거리에 미제 (未濟) 의 한국사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의 기록도 없이 사라진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자리를 찾아 우리의 뼈아픈 옛 일을 돌아보고 윤봉길.안창호.이승만 등의 발자취도 회상한다.

반면 외세에 파괴된 건물들을 보존하는 중국인들의 자세에서 '몽땅 털어내거나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우리의 몰상식을 부끄러워 한다.

또한 미국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캐나다의 토론토 등에 남아 있는 한국 개화기 관련 현장을 돌며 이들을 연결하는 탐방코스 개설을 제안하기도 한다.

태국과 일본은 오늘의 우리가 본받을 만한 사례. 현대화 물결 속에서도 방콕 시내 곳곳에서는 온통 전통건축의 향내가 솟아오르고, 일본 곳곳에 산재한 6천여 곳의 크고 작은 박물관.미술관은 일상의 편력을 증언하고 있다.

새 것만 좇는 우리의 경박한 풍토에 일침을 놓는 셈. 저자는 나아가 민간인의 활발한 참여로 자연.문화보존에 모범적인 영국의 고도 요크시 성곽을 걸으며 묻는다.

"전남 동부, 낙안읍성과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 이런 관점에서 그는 냉전시대 최후의 상징물인 철원 일대를 주목한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이곳을 제대로 보존해 통일의 그 날 역사의 증거로 물려주자는 것.

인류의 과오를 보여주는 것도 훌륭한 문화유산이요, 중요한 것은 과거의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 누가 내일의 역사를 만드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 옛날이여' 를 남발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요 과거는 이를 풀어가는 열쇠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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