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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8월 그리고 50년]다시 가 본 그날 18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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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의 40년 만에 다시, 아니 근대적인 의미에선 처음으로 우리의 정부, 우리만의 시민사회라는 걸 갖게 된 한국인들.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일까.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비판과 꾸짖음의 소리가 높다.

행정당국을 못 믿겠다는 불만, 얄팍한 상혼 (商魂) 을 경계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 주요 신문들도 한동안 자제했던 사건.고발 기사들을 아낌없이 쏟아낸다.

'뚝섬에 불법 사격장.경마장 성행 - 경찰은 알고도 모른체' '환절기 쓰레기 청소 엉망 - 당국, 청소차 절반이 고장났다고만' 따위. 서울시 보건위생국은 쓰레기차 62대, 분뇨차 12대, 산수차 (散水車) 3대 등 모두 77대를 갖고 있으나 '절반 가량이 고장 수리중' 이니 그럴 수밖에. '소비자 우롱' 기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등어 절이는 데 농사용 비료를 사용, 중독자가 속출하자 서울에서는 이북 (원산) 산 고등어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소금이 귀해서' 라는 어이없는 변명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 사회 곳곳에서 판치는 불의들은 정부 수립이 곧 정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친다.

서울 관철동 빈터에 공설시장을 짓겠다며 2백명으로부터 2만원씩의 가입비를 받아 가로챈 정체불명의 '순국청년원호회' 를 잡아달라는 연판장이 수도청에 접수됐다.

'수재 의연금' 은 단순모금에서 미담발굴과 참여촉구 기사로 전환했다.

이태원국교 6년생 6명이 코묻은 돈 5천8백90원과 함께 '동포들을 구합시다' 라는 호소문을 신문사에 전달. 그 바로 옆에 '잠잠한 신흥 졸부들 - 수해구제에 성의 보이라!' 고 꾸짖는 기사가 실려 '빛과 그림자' 가 맞비춘다.

조선왕조 5백년의 영화도 이제는 한바탕꿈일런가.

세간살이가 궁해지자 李왕가는 마침내 운현궁을, 그것도 자하문 밖 별장까지 끼워 3천5백만원을 받고 흥한 (興韓) 재단에 넘겼다.

그런 판에 서북청년회는 "구왕족 처단 철저히 하라" 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각급 관청은 나름대로 서정 (庶政)에 애쓰는 모습. 인천 항만청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없는 이때 옹진~군산간 정기 여객선 운항을 9월부터 주 2회 실시한다고 발표했고, 경성전기 (京電) 는 30와트짜리 가정용 전구를 하나에 30원씩 시판키로 했다.

올림픽 경기는 오늘도 큰 관심사다.

런던 올림픽에 나간 3명의 마라톤 선수가 기껏 23위로 참패하자 곳곳에서 애꿎은 라디오통을 때려부수는 촌극이 속출했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야구왕 베이브 루스가 2년여 투병 끝에 50세를 일기로 '서거' . 그러나 오늘은 무엇보다 궁핍한 신생 대한민국에 미국이 1억달러의 경제원조를 주기로 결정한 날. 나중 얘기지만,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는 속담은 빈말이 아니었다.

김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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