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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35. LA올림픽 총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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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1984년 LA올림픽 선수촌을 찾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右)를 안내하고 있는 김집 한국선수단 부단장(中)과 필자.

1984년 7월 미국 LA에서 제23회 올림픽이 열렸다. 김성집 태릉선수촌장이 한국선수단 단장을 맡았다. 김집씨가 부단장에, 내가 총감독에 임명됐다.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까지도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어 모든 분야에서 중앙정부의 통제가 심했다. 체육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종목별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종목 담당 코치진이 선수의 훈련 일정이나 선수촌 생활을 관리하도록 했다.

당시 종목별 협회의 장은 대부분 대기업 총수였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었다. 레슬링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복싱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유도는 박용성 두산그룹 부회장이, 탁구는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이, 축구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양궁은 정몽구 현대정공 사장이 맡고 있었다. 이들은 번갈아 가며 LA로 날아와 경기가 없는 날엔 선수들을 선수촌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사주며 격려해줬다.

그런데 농구협회장이던 서성환 태평양 회장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 조승연 감독은 "농구는 도대체 뭡니까? 선수들 사기가 떨어져 말이 아닙니다"며 농구 선배인 나를 들볶았다. 나는 "선수들이 기죽지 않도록 외식하고 계산서를 갖고 와"라고 큰소리를 쳤다.

나는 총감독 신분인지라 농구장뿐 아니라 다른 경기장도 찾아다니며 열심히 응원해야 했다. 그런데 모든 경기장을 출입할 수 있는 본부 임원용 ID카드는 이미 '특별 용도'로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다. 부득이 나와 김진선(당시 체육부대장) 남자감독, 한양순(전 국회의원) 여자감독은 마사지사 ID카드를 갖고 다녔다. 마사지사는 종목에 관계없이 경기장 출입이 허용됐다. 경비원들은 나이 지긋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내게도 마사지해주고 들어가라"고 농담했다.

조정선수들이 간식용으로 가져간 오징어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선수들은 틈만 나면 오징어를 구워먹었는데 그 냄새가 지독했다. 어느 미국 기자가 뭘 먹느냐고 묻자 한 선수가 "스낵"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기자는 "스네이크"로 알아들었다. 다음날 LA 타임스가 "한국 선수들은 뱀을 먹는다"고 대서특필했다. 난리가 났다. 한국으로부터 진상을 조사해 즉시 보고하라는 연락이 왔다.

체육부 장관을 지낸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LA에 왔었다. 그는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 기숙사를 개조해 만든 선수촌을 보고 싶어했다. 임원.선수들은 한국선수단 숙소 입구에서 그를 환영했다. 그런데 숙소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흑인 경비원이 제지했다. 노 대표가 가진 ID카드는 선수 숙소까지 출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영호 체육부 장관이 나서 유창한 영어로 한국의 최고위층 인사라고 설명했으나 그 경비원은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노"라고 했다. 이 장관이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전화해 사정을 얘기한 뒤 경비원에게 전화기를 넘겨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경비원은 "이곳 출입 관리는 내 재량"이라며 노 대표를 가로막았다. 한시간가량 실랑이를 벌이고도 노 대표는 한국선수단 숙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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