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일본언론인 후나바시著'표류하는 미일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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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표류하는 미일동맹' 을 읽노라면 톰 클랜시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중앙M&B刊) .미일동맹을 축으로 하는 20세기말 동북아시아의 파워 게임을 이렇게 박진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엮어낼 수 있다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미일동맹이 제일의 가상적국으로 상정 (想定) 했던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난 것은 91년말. 소련이라는 공동의 위협이 사라진 후 3년째가 되는 94년에 와서야 미국.일본은 미일동맹을 '냉전이후' 체제로 체질개선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클린턴 정부가 처음 1년 동안은 경제에 매달려 일본과는 무역마찰만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미일동맹은 북한 핵위기라는 도전을 만났다. 한반도를 포함한 이른바 주변 유사시 (有事時)에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미일동맹의 의미를 다시 세우고, 그 바탕 위에서 21세기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의 방향을 정하는 이른바 '나이 이니셔티브' 작업이 94년에 시작돼 95년에 발표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일본은 비슷한 시기에 방위대강을 발표했다. 미일동맹의 이런 21세기화 작업은 97년 방위협력 가이드라인의 발표까지 와 있다.

이 책은 미국과 일본이 두 나라의 동맹관계를 새로 설정하는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오키나와 미해병대 기지의 반환, 대만에 대한 중국의 미사일 위협, 장쩌민 (江澤民) 체제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중국의 내부사정, 일본의 정치변동, 북한의 핵위기 등 일련의 사태가 미일동맹의 새로운 개념에 반영되는 과정을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한편의 극영화같이 읽는 사람의 눈앞에 그려내고 있다.

저자 후나바시 요이치 (船橋洋一) 는 아사히 (朝日) 신문의 30년 경력의 베테랑 국제기자다.

중국의 베이징에서 출생한 그는 베이징 특파원, 워싱턴 특파원, 북미 총국장을 지내고 지금은 편집위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국제문제 대기자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전에도 국제경제와 국제정치에 관한 8권의 저서를 냈다. 이 책은 저자가 93년에서 97년까지 워싱턴에서 북미 총국장으로 일할 당시 일어난 사건들을 관계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쓴 것이다.

오늘의 정보화시대에 하나의 사건이 국제정치의 정책수립에 얼마나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가를 실감케 한다.

후나바시의 통찰력과 문화적 상식과 지적 (知的) 인프라와 거침없는 표현력 없이는 쓸 엄두도 내지 못할 책이다.

저자의 주관적인 의견이 극도로 자제돼 한일문제나 중일문제를 다루는 장면에서도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의 하나로 대기자 후나바시의 원숙함을 보여준다.

한반도 문제가 주변국가들의 파워 게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 21세기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는 한국의 내일을 좌우한다.

이 책에는 이런 물음에 대한 거의 확실한 해답이 들어 있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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