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 첫 시정연설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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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일본총리는 관저를 나서며 수행기자들에게 "이제부터 정치생명을 건 진검 (眞劍) 승부를 펼치겠다.

지켜봐 달라" 고 말했지만 7일 시정연설에서 그가 빼낸 칼에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6조엔이 넘는 영구 (永久) 감세와 10조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라는 경기회복 대책에 금융시장은 이미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엔화 약세에다 양쯔 (揚子) 강 수해로 인한 중국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날 엔화시세와 도쿄주가는 뒷걸음쳤다.

오부치 총리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현 내각을 '경제회복 내각' 이라 규정짓고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정권의 개혁노선에서 경제우선 노선으로 전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하나는 정책의 속도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오부치 총리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소득세.주민세 등 감세는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오부치의 경제재건 대책이 일본경제를 회생시킬지는 불투명하다.

홍콩 상하이 (上海) 은행 도쿄 (東京) 지점은 "경기대책이 효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이라며 "연말까지 계속될 금융불안과 연쇄도산의 충격에서 일본 경제가 버텨낼지 의문" 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도 "오부치 총리가 내건 공약은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전제돼야 하는 것" 이라며 "파벌 안배로 탄생한 오부치 정권이 그만큼의 리더십을 확보할지 의문" 이라고 말했다.

오부치 총리의 경제재건책 성공여부는 감세와 공공투자로 소비심리를 회복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내수가 회복되고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아시아는 경제위기에서 조기탈출을 기대할 수 있다.

경제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오부치 총리는 하시모토 정권의 기존노선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2001년까지 중앙부처를 절반으로, 향후 10년간 공무원 수를 20% 줄이는 행정개혁에 대해 "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 이라고 다짐했다.

외교노선도 대미 (對美) 외교를 기본축으로 하되 평화조약 체결 등 러시아와의 외교를 강화하는 기존 노선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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