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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성공한 대통령 돼야 … 국민이 밀어 줘야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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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송기인(71) 신부는 낯설다. 하지만 ‘노무현’과 관련짓는 일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을 정치에 입문시켰다. 그는 ‘노무현 국민장’ 때 가톨릭 대표로 집례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는 그로부터 영세를 받았다. 그에게 다가가면 ‘노무현 세계’가 낯익어진다. 그의 눈빛은 형형하다. 사제적 카리스마의 엄숙함이 더해져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따뜻함이 풍긴다.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한다.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의 한적한 시골에서 산다. 그는 삼랑진 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49재를 앞둔 7일 그의 집을 찾아갔다.

송기인 신부가 7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자택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밀양=송봉근 기자]


만난 사람 = 박보균 정치분야 대기자

-노 전 대통령의 유서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의 갈등은 심해졌는데요.

“서로 화합하기 위해선 책임자가 앞장서 풀어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대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이명박(MB)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제 생각으론 화합의 빠른 길은 그런 겁니다. 국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는 거지요. 사과를 표시하고 내일을 위해 힘을 합치자고 하면 국민이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해요.”

-대통령 사과는 검찰 수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데요.

“그런 부담은 있겠지요. 그러나 검찰이 잘못한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서울로 불려 올라갔잖아요. 전직 대통령이면 집에 찾아와 조사하는 게 맞는 건데요. 뚜렷한 증거가 없었잖아요. 망신 주자는 것 아니겠어요.”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합천 에서 끌려갔었는데요.

“그때는 명백한 증거가 있었잖아요.”

-노 전 대통령이 부인과 자녀들의 돈거래를 몰랐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의 성격으로 충분히 그랬을 것으로 생각해요. 부인이 하는 일, 애들이 하는 일을 꼬치꼬치 간섭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정치적 타살론 쪽에 서 계시는 건가요.

“그런 표현을 쓰기보다는 지금 집권층에서 옭아매려고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자살)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보십니까.

“후퇴했어요. 국민 의사 표현을 막는 것이 그래요. 데모 막는 방법이 옛날로 회귀했다고 생각해요. 용산 참사도 마찬가지였고요. 국민 의사를 공권력으로 짓밟은 것은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헌법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민주주의 위기론을 펴고 있습니다.

“그분은 제발 조용히 있으면 좋겠어요. 전직 대통령은 일반 국민과 다르잖아요. 관망하고 말을 안 하는 게 무게와 가치, 역할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말을 함으로써 말에 말려들고 소란스러운 것보다는….”

-DJ는 노 전 대통령과 ‘전생에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요.

“노 대통령은 자기 나름의 철학으로 살다 간 사람이에요. 누구에게 의존했다거나 따라가지 않았어요.”

(“자유인이라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송 신부는 “그는 자유인이었고 독립적인 사람이었지”라고 말했다.)

-죽음으로 상당수 국민적 평가가 비판에서 지지, 향수로 대반전했습니다.

“동정이겠지요. 죽었다는 그 점을 놓고 정치적 지지라고 볼 수 있을까요.”

-(추모 글에서) 서민들 향수를 거론하셨는데요.

“재임 중 노 대통령에 대해 서민들의 불만족이 많았지만, 죽고 보니까 그래도 소통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고 본 겁니다. 소탈한 어투로 친구처럼 소통했던 최초의 대통령이었지요.”

-추모 물결 속에 MB 정권에 대한 불만은 무엇입니까.

“현 정권 들어 부자 세금 경감이라든가 서민들의 힘든 삶, 독선과 소통의 어려움, 그런 일로 국민 불만이 많으니까 현 정부에 대한 국민 반감이 추모로 반작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 전 대통령은 승부사였습니다. 죽음을 결심하면서 대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을까요.

“전혀, 그의 죽음은 그런 것과 상관없다고 봅니다.”

-왜 극단의 선택을 했을까요.

“내가 경험(유신 때 그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다)이 있어요. 자신이 당하는 것은 견디기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옆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어요. 노 대통령도 자기 가족, 주위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참고 이기는 힘이 모자랐던 겁니다.”

(송 신부가 유서를 보여 줬다. 컴퓨터에서 A4용지로 처음 프린트한 것. 위쪽에 ‘5:23 05:10’의 작성 시점이 연필로 적혀 있다. 유서는 그때 고통과 충격을 담고 있는 듯했다.)

-병원에서 시신을 보셨다면서요.

“얼굴은 깨끗했고 편하게 자는 것처럼, 오른쪽 어깨에 시커먼 멍이 들어 있었어요.”

-자살은 종교에서 죄악인데요.

“천주교에서 자살은 가장 큰 잘못으로, 교회 관습은 자살자가 신도들의 공동묘지에 묻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노 전 대통령)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요.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는 거지요. 가족·동료·수족(手足)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으로 생각해야지요.”

-봉하마을에 가는 게 성지(聖地) 순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성지 순례, 그건 아니고요. 그냥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가 보는 거지요. 과도한 의미 부여도 좋은 현상이 아니라고 봐요. 죽음을 과도하게 활용하는 측, 그런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은 실리를 취하려고만 해선 곤란해요. 한나라당도 양보할 수 없다는 거지만.”

(봉하마을에서 조문을 막고 대통령 조화가 짓밟힌 것에 대해 그는 당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짓”이라고 개탄했다.)

-노무현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의 가치 지향점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어요. 미래지향적인 도전, 그런데 사람이란 현실적 이해를 따지니까 그런 것이 잘 안 먹힐 수밖에 없었지요.”

-이 대통령이 서민 중시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제발 그렇게 돼 나갔으면 좋겠어요. DJ, 노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혔어요. 이 대통령은 엄청난 지지를 받아 당선됐어요. 국민도 그의 임기 동안 힘껏 밀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목 잡아선 우리나라가 덕 볼 게 없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은 ‘강부자·고소영’ 정책, 인사 같은 것을 통해 느낍니다. 그런 방향으로 가면 국민이 협조하고 싶어도 못할 겁니다. 대통령이 통치 방법,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박보균 정치분야 대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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