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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형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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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8년 1월 미국 텍사스주 마운틴 뷰 유니트 교도소는 칼라 터커라는 사형수 때문에 소란스러웠다. 그녀는 85년 도끼로 두명을 내리치면서 오르가슴을 느꼈다는 엽기녀다. 그런데 13년 뒤 사형집행을 앞두고 "그리스도를 발견해 영적으로 거듭났다"고 주장한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감형을 호소하고 종교단체가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2월 3일 오후 6시35분 극약이 주사됐다.

흑인 앤서니 포터도 지옥 문턱을 오갔었다. 그는 82년 10대 살해 혐의로 사형수가 됐다. 17년 뒤 99년 2월 마지막 날이 왔다. 최후의 만찬 뒤 죽을 시간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무죄가 됐다. 진범이 잡힌 것이다. 사형집행 15시간 전이었다. 회개해서 죽일 필요가 없어진 사람을 사형에 처하거나, 무고한 사람을 사형대에 올릴 뻔한 이 두 사례는 모두 사형제의 허점을 보여준다.

그런 점 때문에 사형제도를 둘러싸고 오랜 논쟁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59년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조봉암, 한국전쟁 때 한강다리를 폭파했다고 사형당한 뒤 무죄로 판명된 최창식 대령 사건 등은 폐지론의 근거가 되는 사례다. 그러나 죽어 마땅한 범죄자도 있다. 금고털이범 백동호씨가 쓴 실화소설 '대도(大盜.94년)'에 나오는 얘기다. 살해한 아내의 살을 김치와 버무려 버린 성OO, 결혼을 막는다고 동거 여인의 친정 식구를 도끼로 살해한 도OO이 그 예다. 20명을 넘게 죽인 유영철씨도 같은 부류다. 사형 지지자들은 "이런 자들을 왜 살려둬야 하는가"라고 냉소한다.

사형제 폐지가 공론화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계기를 제공했다. 유신 때인 74년 4월 8일 민주화 운동 동료들이 판결 다음날 사형당하는 걸 목격한 충격 때문에 앞장서게 됐고 같은 당을 중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동기가 낯설다.

사형 문제는 결국 '인권'이냐 '정의'냐의 문제다. 억울한 죽음을 막자는 게 인권이라면, 살인자에 대한 처벌은 정의다. 그건 '골라잡기'를 할 대상은 아니다.

정치 보복형 사형은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면 되고, 법의 미흡한 점은 보완하면 된다. 이런 중간단계를 건너뛰고'사형은 구시대 유물이다. 없애자'는 논리는 곤란하다. 살인마의 손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유족들의 "저놈 죽여라"고 하는 절규를 무슨 이유로 국회가 막아야 하는가.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