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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재정 정책, 해외에서 얻는 교훈 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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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파산 위기’에 몰린 미국 캘리포니아주

1978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주민발의’(Proposition) 13호에 대한 투표가 치러졌다. 핵심은 재산세 부담 경감. 주민들이 내야 하는 재산세의 인상폭이 연 2%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자는 것. 결과는 뻔했다. 찬성 65% 대 반대 35%. 집이 없는 저소득층과 일부 지식층이 반대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31년이 지난 오늘, 이 법안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주가 파산 위기에 몰렸다. 고급 주택이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부동산 재산세 수입에 많이 의존한다. 하지만 부동산값이 아무리 뛰어도 세금을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하다 보니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캘리포니아주의 재정적자 규모는 263억 달러. 내년에는 4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재정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단기차용증을 발행해 34억 달러의 자금을 긴급 수혈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가 단기차용증을 발행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7일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췄다. 미국 주정부 중 가장 낮은 등급이다. 투자 부적격 등급보다 불과 2단계 높을 뿐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세수는 줄고 있는데 예산지출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주민발의 13호가 통과된 이후 여러 이익집단들의 발의안이 계속 통과되면서 주 예산은 이리저리 찢겨나갔다.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재정 운영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셈이다. 50개 주 가운데 최고 수준이던 교육보조금은 최하위권으로 떨어졌고, 빈곤층을 위한 주립 병원과 응급실까지 문을 닫는 처지에 놓였다.

재정을 정상화시키려면 증세에 나서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주민발의 13호 탓에 세금을 인상할 때는 ‘주 의회 재적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정위기를 함께 해결해야 할 주 의회는 여야의 이해대립으로 교착상태다. 5월에는 재정적자 해결을 위해 6개 법안을 주민투표에 부쳤지만 5개가 부결됐다.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표현처럼 ‘재정적 아마겟돈’(Armageddon·지구 최후의 날)에 처하고 있다.

인하대 경제학과 정인교 교수는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인기투표식 정책을 펼칠 경우 어떤 위험에 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우리도 비탄력적이고 방만한 재정지출 관행을 고치지 않는다면 나라 살림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리조나·펜실베이니아·일리노이 등 미국 다른 주의 곳간도 비어 가기는 마찬가지다. 주 의회 협의회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의 2010 회계연도 예산부족액은 1210억 달러로 추정된다. 올해보다 18%가량 늘어난 규모다.

손해용 기자

‘복지 선진국’ 스웨덴·네덜란드·독일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한해 실업급여를 준다.’ ‘복지 지원금을 부당하게 받은 사람은 실형에 처하거나 지원금을 몰수한다.’

스웨덴·네덜란드·독일 등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은 복지예산이 엉뚱하게 새는 것을 막기 위해 까다로운 지급 조건과 겹겹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기획재정부 태스크포스(TF)가 최근 복지예산 전달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이들 3국을 돌아본 결과다.

김규옥 재정부 사회예산심의관은 8일 “이들 3국 정부는 일하지 않고 복지 지원에만 기대는 이들에겐 가차없이 지원금을 끊을 정도로 복지예산 관리가 엄격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복지예산의 누수를 막기 위해 오는 11월 복지 관련 전산망을 통합 가동할 계획이나 복지 선진국이 되기까지는 갈 길이 먼 셈이다. 다음은 TF의 보고서에 나타난 3국의 복지 실태.


◆근로와 복지의 결합=복지 선진국이라고 취약계층에게 돈을 그냥 주는 게 아니었다. 근로와 복지를 철저하게 연결시키고 있었다. 스웨덴과 독일은 직업훈련이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구직활동을 해야만 실업급여를 제공한다. 근로를 통한 자활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독일은 ‘지원한 만큼 요구한다’는 모토 아래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예컨대 정부가 제공하는 취업기회를 3회 이상 거부하면 실업급여 지급을 중단한다. 근로능력이 있으면 복지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 의사와 심리치료사까지 동원해 하루에 3시간 정도 일할 수 있는지 가려내고, 근로능력이 없는 것으로 입증돼야 복지 지원금을 준다.

네덜란드는 실업급여 대상자의 자격 심사와 일자리 알선이 동시에 이뤄진다. 실업급여를 받으면 정부가 추천한 일자리 면접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27세 이하는 실업급여 외의 복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복지 지원금에 기대지 말고, 무엇이든 땀 흘려 일을 하라는 것이다.

◆엄격한 수급 관리=독일은 현장 복지담당 공무원을 ‘2인 1조’로 짠다. 복지 지원금 횡령 등 부정행위를 상호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부정수급 관리단이 매년 감사를 실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복지 지원금을 타는 사람의 자격을 1년 단위로 재심사한다. 정부는 부정 수급을 적발하면 그동안 지급한 돈을 철저하게 환수한다. 네덜란드는 부동산·자동차 등록부 등 개별 정보시스템을 일일이 확인하고, 등기소·국세청 등의 데이터를 공유해 부정 수급자를 가려낸다.

스웨덴은 복지 지원금을 받으려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자격을 입증하도록 한다. 정부에 손을 벌리기에 앞서 부동산 등 자산을 처분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적발된 부정 수급자나 공무원에 대해선 빼돌린 금액만큼의 벌과금을 징수하거나 실형에 처한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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