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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의불 실업대책]상.얼마나 심각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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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퇴출된 대동은행 직원 朴모 (35) 과장. 은행원 8년동안 적어도 먹고 사는 데는 별 문제 없었던 평범한 인물로 세 자녀의 아버지. 그는 지난 한달동안 평소 경험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기막힌 일들을 경험했다.

갑자기 실직자 신세가 돼 명동성당과 지하철역에서 노숙하거나 여관을 전전하면서 시위를 벌인 것. 朴과장은 입사하면서 2천만원을 대출해 우리사주를 구입했고, 결혼할 때 전세금으로 2천만원을 추가 대출받았다.

퇴직금은 받아보니 2천만원. 결국 현재 갚을 돈 2천만원과 휴지조각이 돼버린 우리사주만 달랑 남아있다. 약간의 저축이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 실업 대란이 눈앞에 다가왔다.

실업자가 '사회 불안정 초기' 에 해당하는 1백50만명 수준을 돌파한데다 이들의 실업기간도 계속 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연말께는 1년이상 장기실업자가 현재의 13만명에서 50만명 수준으로 불어나고 전체 실업자 수는 2백만명에 육박해 사회 안정선이 무너질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엔 본격적인 금융.기업 구조조정으로 화이트 칼라 실업자가 양산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5개 퇴출은행 임직원 수는 모두 9천40명. 인수은행별로 고용 승계 규모는 다르지만 잘 해야 절반을 넘지 못한다.

최소 6천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될 상황이다.

나머지 은행 직원 12만명 가운데 상당수도 앞으로 추가 정리가 불가피하다.

7개 조건부 승인 은행들의 경우 이행계획서에 30% 정도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19개 주요 공기업에서도 2001년까지 3만명이 감축된다.

이들을 모기업으로 한 자회사의 매각.통폐합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아예 직장 찾을 엄두를 못내는 사회 초년생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대졸 이상 실업자는 31만6천명으로 올 상반기중 19만6천명이 늘어났다.

6월중 취업자는 지난해 6월에 비해 1백19만5천명 (5.6%) 줄었으나 20~29세의 청년층은 66만3천명 (13.8%) 이 감소해 전체 평균보다 더욱 많이 줄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30대 그룹 가운데 무려 21개 그룹이 올 가을 대졸사원 채용계획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본지 7월 21일자 1면 참조) 최악의 고용 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잠재실업자 문제도 심각하다.

취업자 가운데 18만2천명에 이르는 일시 휴직자도 무급휴직 등으로 고용상태가 불안한 경우가 많으며, 1주일에 17시간 이하 근무하는 46만명도 정상적인 취업상태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아예 실업자.취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중에도 잠재실업자가 수두룩하다.

이들을 합치면 실제로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은 이미 2백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이미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경우 고용보험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이 끝나가고 있는데다 앞으로 구조조정이 가속화하면 실업자 증가 속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30대 그룹 가운데 11개 그룹이 하반기중 감원하거나 감원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사상 유례없는 60%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감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강하다.

또 은행 여신 10억원 이상의 중소기업 2만개중 최소한 2천개는 퇴출대상으로 분류되고 있는 등 중소기업 부문의 실업자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은 올 연말 실업자가 1백70만명, 대우경제연구소는 1백75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은 하반기 실업률을 7.2~7.3%선으로 점쳤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과 삼성경제연구소는 연말 실업자가 2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통해 실업자수를 1백50만명 수준으로 묶고 생계비 보조 등 직접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기대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실직한 1백53만명 가운데 고용보험 적용을 받는 사람은 18일 현재 22만5천명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명퇴금을 받았거나 부모 등의 지원으로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사람 20만~30만명을 제외한 1백만명 가량은 돈을 뿌려서라도 도와줘야 할 형편이다.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도 좋지만 이들이 극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최저 생계비를 마련해주는 데 노동정책의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업 대란으로 사회가 불안해지면 경제개혁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인원정리를 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은 커녕 경기회복도 어렵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결국 구조조정을 조속히 하지 않으면 경기부양의 기회도 놓치고 만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재정경제부 김철주 (金哲周) 서기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자를 줄이는 게 목표가 돼서는 안되며, 경제를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박의준.박장희 기자

◇ 도움말 주신 분 = 김대일 (金大逸)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김민경 (金民卿) 통계청 사회통계국장.김성식 (金聖植)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어수봉 (魚秀鳳)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엄봉성 (嚴峰成) 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장상수 (張相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정재룡 (鄭在龍) 재정경제부 차관보.채창균 (蔡昌均)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하정훈 (河政勳)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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