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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사도성의 이야기' 발굴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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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번에 국내 최초로 공개된 최승희 주역의 무용극 영화 '사도성의 이야기' 는 무용계만 아니라 영화계와 국악계에도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승희 춤의 진면모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근대무용 연구를 급진전시킬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6.25 이후 북한 영화사와 북한 민족음악 이해라는 측면에서 귀중한 사료이기 때문이다.

조선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한 이 영화는 북한이 정권수립 이후 처음으로 만든 컬러영화다.

기록상으로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컬러영화는 이보다 앞서 남한에서 49년 홍성기 감독이 만든 16㎜ 극영화 '여성일기' .하지만 문헌상에 제목만 남아 있을 뿐 필름은 없어졌다.

이 작품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현존하는 최고 (最古) 의 컬러작품은 61년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 . 공연모습을 카메라로 옮긴 단순한 기록영화가 아니라 남북한 영화사를 통틀어 무대예술을 영화화한 전무후무한 작품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

또 월북 이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북한 영화인들의 활동을 직접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정준채와 촬영을 맡은 오응탁은 광복 이전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화인들로 국내 영화사 연구가들에게는 낯선 이름.

하지만 이 작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촬영상을 수상한 점으로 비추어 당시 북한 영화인의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준다.

상명대 영화학과 조희문 교수 (영화사) 는 "요즘 제작되는 북한 영화와는 달리 이념이 덜 개입한 초기 북한영화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단 이후 남북한 영화의 귀중한 비교자료" 라고 말한다.

또 영화 기법적인 면에서 "군무를 스펙터클하게 잡는다든가 인물 한사람을 클로즈업 시키는 등 화면변화가 깔끔하게 처리된 것을 보면 연출이 상당히 안정적인 것을 알 수 있다" 며 "크레인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를 비추는 다운 샷이 사용되는 등 당시 북한의 영화제작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준다" 고 밝혔다.

한편 이 영화는 국악계의 개량악기 연구와 무용음악 작곡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내 국악계는 지난 96년에 들어서야 국립국악관현악단 박범훈 단장이 국악기 개량과 오케스트라 편성을 처음 시도한 데 반해 북한은 최승희 무용극을 위해 이미 50년대부터 국악기 개량을 시도했다.

일제하의 가야금 산조 최고 명인으로 꼽히는 월북 국악인 최옥삼 (국내에는 최옥산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이 작곡한 '사도성의 이야기' 무용음악은 기존 국악의 삼현육각에서 벗어나 개량한 국악기를 이용해 50~1백여명의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을 한 최초의 작품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북한 국악 개량의 앞선 성과와 실험적인 무용음악 작곡은 우리 국악계의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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