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씨름판에 '씨름의 맛'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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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씨름의 묘미는 화려하고 다양한 기술로 상대를 모래판에 쓰러뜨리는데 있다.

1백㎏이 훨씬 넘는 거한들이 번쩍번쩍 들리고 시원스레 모래판에 나뒹굴 때 관중들은 희열을 느끼고 흥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묘미가 사라지는 순간 씨름에서는 다른 어떤 것도 무의미하게 된다.

19일 경남 산청에서 벌어진 98프로씨름 올스타전은 이같은 사실을 극명히 보여줬다.

모처럼 벌어진 씨름을 보기 위해 냉방시설도 안된 체육관을 가득 메운 2천여 관중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시종 기대에 찬 표정으로 모래판을 응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곳곳에서 "재미없다" "지루하다" 는 푸념이 터져나왔다.

마치 스모선수를 연상시키는 1백50㎏대의 장사들이 소싸움 하듯 삿바를 잡고 지루하게 버티기만 하는 경기에 실망한 것이다.

80년대 팬들을 매료시켰던 뒤집기 등의 화려한 기술은 오간데 없이 잡채기.밀어치기 등 잔기술만으로 승부가 가려지기 일쑤였다.

기술보다 덩치로 상대방을 제압하려 대책없이 체중을 늘리다 보니 순발력과 유연성이 떨어져 자연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없게 된 탓이다.

주최측은 국악무용단과 치어리더 등을 동원해 흥을 돋우려 애썼으나 이미 지루한 경기에 지친 관중들은 냉담할 뿐이었다.

씨름은 일찍부터 프로화를 추진, 이만기.강호동 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며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씨름판은 분명 침체됐다.

씨름판 재건을 위한 보다 큰 노력이 아쉽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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