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노숙자대책협의회 위원 유성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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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대문구충정로 산비탈에 위치한 '구세군 오뚝이 쉼터' 는 세상살이에 지친 노숙자들의 보금자리. 6월초 문을 연 이곳에서 유성인 (柳聖仁.52) 씨는 노숙하다 들어온 90여명에게 상담과 수발을 해주느라 몹시 분주하다.

불과 1달전만 해도 노숙자였던 그가 '후배 노숙자' 2천여명의 애환과 불편을 듣고 해결해 주는 일을 맡게되기 까지 숱한 시련의 터널을 거쳐야 했다.

"IMF로 회사가 부도를 맞고 그 충격으로 아내로 부터 이혼을 당하고 보니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었지요" 종로3가에서 번듯한 전기공사 전문 점포를 운영하던 '사장님' 柳씨는 지난해 4월 한보 부도로 거액의 하청공사 대금을 떼이면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시련은 겹쳐온다는 말처럼 지난해 말 인천 상아건설이 부도를 낸뒤 4억원의 손해를 보고는 회사 문을 닫고 말았다.

"죽는게 낫겠다 싶어 자살도 시도해 봤지요. 그런던중 올1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딸 (25).아들 (19) 과도 헤어졌습니다" 고교졸업후 맨몸으로 일군 재산과 단란한 가정마저 잃은 柳씨는 올1월 부터 차가운 서울역 지하도에 신문지를 이불삼아 새우잠을 청해야 했다.

라면과 빵으로 하루 한끼를 때우며 버티던 그는 지난달 초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간 정동 구세군쉼터에서 합숙이 가능한 오뚝이 쉼터를 소개받아 입소하게 됐다.

지금은 난지도에 쓰레기 분류 공공근로에 나가는 등 재활의욕을 복돋우고 있는 柳씨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뜻밖의 감투 하나를 받았다.

생생한 경험을 살려 노숙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달라는 고건 (高建) 시장의 요청으로 각계 전문가 15명이 구성된 '노숙자대책 협의회' 에 위원으로 위촉된 것.

지난 15일 시청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 柳씨는 당국의 노숙자 대책에 대해 "마구잡이식 정리.단속은 위험한 발상" 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또 무료급식 확대 등 지나치게 온정주의적인 접근은 오히려 노숙을 조장할 수 있는 만큼 "겨울이 오기전에 기본적인 숙식만 해결할수 있는 쉼터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 이라고 제안했다.

이와함께 노숙자에게는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만큼 쉼터에서도 구직 정보를 제공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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