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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도 높은 근로자 해고는 큰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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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고용 불안이 없으니 일단 마음이 편합니다. 부모님께 계속 용돈이라도 드릴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무기계약으로 전환돼 다행입니다. 정규직과 불편한 관계도 상당 부분 줄어들게 돼 동료애가 더 끈끈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방의 모노인병원 정모(47)씨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씨는 4년 전 이 병원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지난달 30일 계약이 끝나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 병원에서는 정씨와 함께 같은 날 9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비정규직 간병사와 조리사·간호조무사 60여 명도 업무상 과실 등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즉시 무기계약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이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된 데는 노조의 힘이 컸다. 이 병원 노조는 지난해 9월 사용자와 첫 단체협약을 했다. 여기에 ‘계약직·촉탁직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기간이 만료됐다는 이유로 해고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노조가 이렇게 할 때까지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정규직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상국 노조 사무국장은 “고용 불안이 심하다 보니 환자들의 불만이 많았다. 정규직이 다소 반발했지만 노조가 여러 차례 설명회를 개최하며 설득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회사의 경영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임금을 사실상 동결했다”고 말했다. 이 병원 총무과 배길수 계장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 고객이라 조금이라도 오래 일한 근로자가 환자의 고통을 잘 덜어주고 병수발을 잘할 것 같아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근로자 해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무기계약직(정규직화)으로 전환하는 데가 더러 나오고 있다. 전환 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인삼공사는 1일자로 193명의 비정규직을 계약해지했다. 하지만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자회사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한국인삼공사 비정규직에서 자회사 공영기업의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주로 운반·포장 등의 일을 한다. 이 회사 총무과 윤여택 팀장은 “숙련도가 높은 근로자를 법 때문에 계약해지 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큰 손실”이라며 “공기업 경영 효율화와 같은 부담은 있지만 고민 끝에 이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규직 전환 시험을 치른다. 다음 달 1일 계약직 사무보조원 66명을 단계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업무 이해도 시험을 본다. 세 번 응시 기회를 주고 떨어지면 해고된다. 사무보조원에 해당하는 새로운 직급을 만들었다. 지금은 5급이 최하위인데 6급을 새로 만든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김원배 이사장은 “정규직은 모두 시험을 쳐서 들어오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선발 과정을 마련했다 ”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02~2006년 523명의 비정규직을 이런 방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부산교육청은 5일 학교의 수업과 행정 보조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직원을 무기계약으로 전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고용기간 2년을 채우는 공립학교와 직속기관에 근무하는 490명을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사립학교와도 협의를 거쳐 500명가량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등 단계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김기찬·장정훈 기자

◆무기계약직=말 그대로 일하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다.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다는 의미에서 정규직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해당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사규, 단체협약에 따라 정규직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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