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대폭교체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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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은행 부실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세웠다.

은행 구조조정에 드는 비용이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므로 정부가 책임추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부실에 대한 문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도가 약했다.

은행이 부실화해도 당국이 나서지 않으면 경영진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전처럼 '사건성 처벌' 수준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일정한 기준을 정해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무차별적으로 묻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은행감독원은 퇴출은행에 대해 대대적인 특검을 준비중이다.

물론 책임을 추궁한다고 이미 은행이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는 어렵다.

거래기업이 쓰러지면 한번에 수백억원대의 부실대출이 생긴다.

이를 임원이나 실무자 몇명의 재산을 빼앗아 보전할 수는 없다.

정부도 이런 한계는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선례를 남기기 위해 잔뜩 벼르고 있다.

앞으로 새로 들어올 경영진의 책임의식을 높이는데 효과가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여신담당 실무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실에 대한 책임을 은행원에게만 지울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따져볼 대목이 많다.

은행들은 과거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대출압력을 많이 받아온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보사태도 그렇게 해서 터져나왔다.

정부의 지시에 따르다 은행이 부실을 낸 사례도 많다.

부도유예협약에 따르거나 협조융자에 억지로 참여하다 부실을 키우기도 했다.

또 최근엔 중소기업 지원시책에 따라 면책조항까지 만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해주고 있다.

은행원들은 스스로를 '부실의 하수인' 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은행의 부실을 키운 정책담당자의 책임까지 함께 물어야 형평에 맞다는 것이다.

은행원에 대해선 '경영실패' 에 대해, 공무원에 대해선 '정책실패' 에 대해 각각 똑같이 책임을 추궁하고 처벌을 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퇴출은행에 대해 4~5년전의 부실책임을 따지고 들 경우 은행감독원도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때는 감독을 제대로 못하고 이제와서 은행원만 다그치느냐는 반론이 당연히 나오기 때문이다.

한편 '엄벌주의' 로만 나가다 보면 자칫 은행원들의 보신주의를 키우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처벌을 의식해 확실한 대기업 아니면 대출해주지 않아 금융경색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이때 피해보는 것은 중소기업과 개인 고객들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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