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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위추우위 “문화 뒷받침 없는 경제발전은 야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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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까지 이 땅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사상서나 문학 작품을 읽어야만 했다. 그 속에 ‘진리’와 교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책들은 서양 것으로 대체가 됐고 중국인의 글을 읽는 것은 중문학 연구자 등 특정인의 일로 국한됐다.

이런 가운데 위추우위(余秋雨·58)라는 중국인이 최근 한국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루쉰(魯迅·1881~1936)·린위탕 (林語堂·1895~1976) 이후 현대 중국 작가로서는 드문 일이다.

지금까지 그의 책은 다섯 권이 한국어로 번역·출판됐다. 『중국문화답사기』(원제 文化苦旅)가 2000년 처음 나온 이래 『세계문명기행』 (千年一嘆), 『천년의 정원』 (山居筆記), 『유럽문화기행 1』 (行者無彊)이 뒤를 이었고 지난달에 『유럽문화기행 2』가 출간됐다. 미래M&B에서 나온 이 책들은 모두 약 3만부가 팔렸다.

중국에서는 해적판까지 포함해 1000만부 이상 판매됐다는데 과연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그가 중국과 외국에서 역사와 문학이 담긴 기행문을 쓰며 독자들에게 던지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글을 쓰는 그의 인문학적 소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품고 지난 달 중순 중국 상하이에서 그를 만났다.

위추우위는 “내 나라 사람들이 물질적 부흥에만 관심을 가지고 문화적 부흥은 외면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나는 그래서 대중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은 사람들이 교수나 문인이 쓰는 전통적인 글을 읽지 않는 까닭에 문화적 소양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을 보며 시대에 맞는 글을 써 사람들을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의 상태로 이끌려고 했다”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한국에 선생의 책을 읽는 사람이 꽤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되도록이면 사람이나 세상과 접촉하지 않고 있어 외부의 소식에 어둡다. 요즘의 중국은 너무 번잡하고 시끄러운데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숨어 지내며 혼자 공부하는 때가 많다.”

-상하이의 한 서점에 들렀더니 당신의 책 가운데 여러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었다. 어떤 책은 없어서 못판다고 했다. 중국에서 당신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가.

“얼마전 나온 통계에서 지난 10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0권 중 세 권이 내 책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내 글이 여러 편 실려 있고, 상하이의 대학생들은 최소한 내 책 한두권은 읽었다고 보면 된다. 중국에서는 불법으로 복제돼 팔리는 책이 워낙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를 헤아릴 방법이 없다. 곧 새로 나올 내 책은 출판사가 초판으로 40만권을 찍기로 했다.”

-책 속에서 중국과 서양의 고전을 수시로 인용하고 역사에도 해박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학문적 배경이 궁금하다.

“중·고교 때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나 영어와 고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영어는 대학에 가서 책을 읽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잘 배웠다. 대학에 입학한 뒤 문화혁명이 일어나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염에 걸려 시골로 요양을 갔고 그 지역 도서관에서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특히 당신의 글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정도로 젊은이가 몰린다. 이는 개인 의식이 커가는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내가 딱딱하고 어렵게 글을 쓰는 다른 지식인과는 달리 솔직하고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도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간은 우매에서 야만으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간다. 현재 중국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문명으로 사람들을 이끌 사상가가 없고 문화적으로도 낙후한 상태다. 이는 청대의 고증학 때문에 그 이전 시대의 자유로운 학술과 문화의 분위기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독자들이 내 글을 통해 춘추 전국과 한나라·당나라 때의 인문적 유산과 다른 나라의 앞선 문명의 위대함을 느끼기를 간절히 원한다.”

-유럽 각국을 돌며 『유럽문화기행』을 썼는데, 유럽 문화는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높은 수준의 이성을 일상생활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유럽 문화의 특징이다. 계몽주의를 거치며 이성적 삶이 보편화된 것이다. 그에 비해 중국 사람은 너무 극단적이고 감정적이다. 그 좋은 예가 많은 사람이 이성적 판단 없이 부화뇌동했던 문화혁명이다.”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과 중국은 문화적으로 비슷한 측면이 많다. 최근 중국의 청년들이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글을 통해 중국 문화와의 즐거운 만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상하이=이상언 기자

[위추우위는 누구] 예술이론과 역사에 뛰어난 지식인

1946년 중국 저장(浙江)성 위야오(余姚)현에서 태어났다. 상하이희극원을 졸업한 뒤 이 학교의 원장을 지냈다. 푸단(復旦)대와 중국과학기술대학 등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지만 강의보다는 집필에 치중하고 있다.

예술이론에 조예가 깊어 『희극이론사고』(戱劇理論史稿, 1983)와 『희극심미심리학』(戱劇心美心理學,1985) 등으로도 중국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92년『중국문화답사기』가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중국·대만 등 중화문화권에서 지금까지 수백만부 이상(공식 집계) 판매됐고, 해적판으로도 약 1000만부가 팔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둔황·싼샤·쑤저우 등 중국의 유적지에 대한 감상을 중국의 역사와 고전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 풀어낸 것으로 상하이시 출판상과 대만 연합신문사 최우수 서적상 등을 받았다.

99년에는 새 천년을 앞두고 홍콩의 펑황(鳳凰) 위성방송에서 제작한 ‘밀레니엄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리스·이집트·이스라엘·이라크 등에 대한 기행문인 『세계문명기행』을 발표했다. 이 책 역시 중국과 대만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심규호 제주산업정보대 교수와 그의 부인인 유소영 전 중국 양조우(楊州)대 교수가 위추우위의 책을 처음 소개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다섯권을 번역했다. 그에 대한 국내 논문으로는 ‘위추우위 산문:개척과 곤혹’(김회준 부산대 중문과 교수)과 ‘위추우위 문화산문과 위치우위 비판 붐에 관한 단상-유홍준과의 비교를 통한 한·중 두 나라의 문화현상 고찰’(김미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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