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씨-검찰,환란청문회 법정공방 '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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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도 할 말 없지만 형사상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10일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 (재판장 李鎬元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외환위기사건 첫 공판에서 강경식 (姜慶植) 전부총리와 김인호 (金仁浩) 전경제수석은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은폐 혐의 등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했다.

머리를 스포츠형에 가깝게 짧게 깎고 나온 姜전부총리는 모두 (冒頭) 진술을 통해 "현재의 외환위기에 대해 당시 경제책임자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며 "그러나 모든 것은 정책판단의 실수일 뿐 고의가 아니므로 형사처벌은 부당하다" 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이승구 (李承玖) 대검중수2과장은 검찰 모두진술에서 "길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생활고로 목숨마저 끊는 사례가 빈발하는 이때 피고인들은 그 책임을 정치권과 언론의 탓으론만 돌리고 있다" 고 피고인측을 공격했다.

검찰은 이어 벌어진 직접신문에서 "피고인은 경제가 무너져 내리는데도 재정경제원 고위간부들을 이끌고 지방강연을 다니며 우리 경제의 거시지표가 좋다는 등 실상을 호도하지 않았느냐" 며 외환위기를 고의적으로 은폐한 혐의를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와 노트북 비망록에 적힌 내용을 들이밀며 姜전부총리의 삼성자동차공장 부산유치 개입의혹에 대해서도 추궁했다.

이에 대해 姜전부총리는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하도록 도와 준 게 아니라 부산은 국제적인 무역항으로 입지조건이 좋기 때문에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한다면 부산으로 유치하려고 노력했을 뿐" 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또 비망록에 적힌 대통령 출마 및 신당창당 계획이 외환위기 은폐와 관련있다고 추궁했으나 姜전부총리는 "대권에 대한 생각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외환위기를 은폐하려 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고 답변했다.

이날 공판에는 최광률 (崔光律).서정우 (徐廷友).노승행 (魯勝行) 변호사 등 쟁쟁한 중진변호사 10명이 검찰의 신문요지를 꼼꼼히 메모해 다음 공판변호인의 반대신문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검찰은 외환위기 수사과정에서 이석호 (李奭鎬) 전울산주리원백화점회장으로부터 "송기태 (宋基台) 전조흥은행장에게 5천만원을 줬다" 는 진술을 받아 내고 수사기록을 姜전부총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증거로 제출했다.

姜전부총리의 친구인 李전회장은 지난 4월 24일 울산지검에서 받은 1차조사에서 "지난해 12월 조흥은행에서 98억원을 대출받는 데 대한 사례비로 올 1월 宋전행장에게 1억원을 건네면서 그중 5천만원은 장철훈 (張喆薰) 조흥은행장에게 주라고 했으나 張행장이 안 받는다고 해서 5천만원을 돌려받았다" 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李전회장이 울산지검에서의 진술을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며 완강히 번복하는 데다 宋전행장이 미국으로 출국해 더 이상 수사할 수 없었다" 고 밝혔다.

이상복.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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