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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특성화가 살 길이다] 부산대 김인세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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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만난 사람=양영유 교육 데스크


-부산과 양산 캠퍼스를 둘러보니 공사가 한창이다.

“2003년 취임 이후 50여 개의 건물을 지었거나 신축 중이다. 낡은 껍질을 깨고 새 모델을 만드는 작업이다. 부산캠퍼스 정문 옆에 들어선 효원문화회관은 변화의 상징이다. 대학 최초로 민자를 유치해 지은 지상 7층, 지하 4층짜리 복합문화시설이다. 주민과 학생을 위한 쇼핑센터, 극장, 음식점, 평생교육원을 갖췄다. 업체가 운영하면서 이익금의 5%를 학교에 주고, 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한다. 30년 뒤에는 학교가 운영권을 갖는다. 대학이 발전하려면 돈도 벌어야 한다.”

-대학이 ‘항공모함’처럼 몸집이 크다. 한 해 신입생이 4500명, 재학생이 3만 명을 넘는데 특성화가 가능한가.

“국립대의 존재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서울대는 사립대가 할 수 없는 분야도 연구한다. 예컨대 조선시대 형사들의 활동이라든가, 고려시대 농사를 짓는 기관에 대한 연구는 서울대 아니면 누가 하나. 부산대도 비슷한 역할이 있다. 부산·울산·경남권 800만 시민의 경제·문화·교육·산업을 이끌어가야 할 사명이다.”

-그래서 캠퍼스를 5개로 운영하는 것인가. 캠퍼스별 특징을 설명해 달라.

“2006년 국립 밀양대와 통합했다. 옛 밀양대 캠퍼스(밀양·내이)를 합쳐 5개가 된 것이다. 본교·분교 개념이 아니라 모든 캠퍼스가 전문 영역별로 특화됐다. 부산캠퍼스는 조선·항공·기계·금융·로스쿨·인문사회·기초과학 등 종합연구를 맡는다. 올 3월 둥지를 튼 양산캠퍼스(경남 양산시)는 의·생명 특화로 승부한다. 양산부산대병원과 어린이병원, 지진모사실험동도 갖췄다. (웃으며) 양산병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고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밀양캠퍼스(경남 밀양시)는 나노·바이오, 밀양시 내이동 내이캠퍼스는 산학협력 연구단지, 부산시 아미동의 아미캠퍼스는 도시형 메디컬센터로 재단장할 것이다.”

-캠퍼스만 분산한다고 특성화가 이뤄지나. 중요한 것은 콘텐트다.

“백화점식으로 한 군데 몰아넣고 특징 없이 가르치는 걸 파괴하자는 것이다. 대학은 지역에 인재를 공급하고, 지역 경제를 살찌우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기관도 특성화를 인정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남부분소가 양산으로 온다. 부산은 금융·해운·통상 도시다. 그래서 로스쿨도 금융·해운·통상 분야의 전문 법조인 양성으로 차별화했다. 금융법연구센터와 해운통상법연구센터도 설립한 로스쿨은 우리뿐이다.”

-그래도 몸집이 크면 뛰기 어렵다.

“학문 분야 구조조정도 할 예정이다. 경쟁력 있는 분야를 키우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조정할 방침이다. 국립대로서 공익의 역할도 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과감히 수술도 해야 한다. 초석을 다져 놓으면 후임자가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2학기부터 논의하겠다.”

-지역 경제에 대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어떻게 연계하고 있나.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 산업계는 배를 많이 만든다. 그래서 기계·조선·해양 분야를 특화했다. 현대·삼성·대우·한진·STX 등 세계 5대 조선소가 있는데 필요 인력의 40%를 부산대가 공급한다. 조선 분야와 함께 전체 산업부품의 60%가 ‘부울경’에서 나온다. ”

-63년 전통의 부산대 명성이 예전만 못하다.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원인은 재정 한계에서 비롯됐다. 우리는 등록금과 국고 이외는 돈을 받을 수 없다. 총장이 되고 나서 현물을 포함해 2600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았다. 이 돈과 등록금·국고는 교육연구비로 다 나간다. 국립대도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래서 제3의 수입원을 찾고 있는 것이다.”

-법인화 추진을 염두에 둔 것인가.

“그렇다. 대학이 발전하려면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 법인화를 추진 중인 서울대처럼 우리도 준비하고 있다. 실버산학단지·호텔·골프장도 지을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안에는 골프장도 있고 쇼핑센터가 10여 개나 있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

-명성이 약해진 원인을 재정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교수도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수를 깨우기(wake up) 시작했다. 연구비를 주면서 논문을 쓰게 했다. 300만원이던 연구비를 지금은 2000만원을 준다. 인센티브 차이가 최고 4000만원 난다. 국립대는 이런 것도 못했다. 강의의 질이 낮은 교수나 강사는 2년간 강의를 제한한다.”

-교수들의 반응은 어떤가. 구체적인 성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차이가 확 나니까 교수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부 조사(2008년)에서 전국 4년제 대학 가운데 총 논문 수 3위, 과학인용색인(SCI) 논문 수는 3위, 교원 1인당 논문 수는 종합대 2위를 했다. 명성을 회복 중이다. 밤늦게 불이 환한 연구실을 보면 안다.”

-경제난으로 졸업생들의 취업이 어렵다. 지방대는 특히 더 어려운데 ….

“취업동아리를 102개 만들었다. 단순 동아리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임이다. 삼성 입사를 준비한다면 연구소·반도체·유통 등 희망 부분이 다양하다. 맞춤형 취업준비를 교수가 지도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국립대는 신입생 지역 할당을 많이 하라고 주문했다.

“서울대는 지역 할당을 해서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방대는 그렇게 하면 우수 학생이 오지 않는다. 우수 인재는 서울로 가고 지방에 할당되는 학생은 질이 떨어진다. 서울대는 가능하지만 지방 국립대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총장직을 수행하느라 의사 활동을 못했다. 향수가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가 의사로 인술을 펴라는 의미로 인술제세(仁術濟世)에서 이름을 지었다. 의사로 일할 때는 의사룸에 붓글씨로 ‘決戰’이라는 한자 문구를 써놨다. 환자를 살리려 싸우러 간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바빠서 향수를 느낄 만한 여유가 없다. (껄껄 웃으며) 내 수행비서 1년 하면 쓰러진다.”

글=양영유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김인세 부산대 총장=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부산고와 부산대 의대를 나와 79년부터 부산대 의대 교수(마취통증의학)로 일했다. 3대(조부·부친)가 의사 집안으로 부인도 의사다. 미국 컬럼비아대와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부산대 의대 학장을 거쳐 2003년 총장에 취임한 뒤 2007년 9월 연임했다. 국립 밀양대와의 통합, 국내 첫 한의학전문대학원 유치, 양산캠퍼스 조성 등을 일궈냈다. 산문집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으며』와 『겨울바다에 뜬 별, 개밥바라기』를 낸 글 쓰는 총장이다. 소탈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추진력이 강하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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