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회 프런트] “강력반 형사 12년, 시신·잠복·술과 친구 됐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김성순(39·여) 경위가 ‘으뜸 여경 대상’을 받았다. 1일 경찰청에서 열린 제63주년 여경 창설 기념행사에서다. 1995년 순경으로 시작해 최근 12년간 살인·강도 등 강력사건과 마약 범죄를 담당했다. 김 경위는 강력반 형사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와 친해져야 한다고 했다. 시신과 잠복, 그리고 술.

‘강력반 여(女)형사’인 김성순 경위가 서울경찰청 시뮬레이션 사격장에서 권총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김 경위는 제63주년 여경 창설 기념식에서 ‘으뜸 여경 대상’을 받았다. [박종근 기자]

# 시신=2002년 서울 중랑경찰서의 강력반에 배치됐다. 당시만 해도 일선 경찰서에선 여경을 꺼렸다. 그러나 박성민 강력팀 반장이 “형사는 형사일 뿐이다. 남성·여성 차이는 없다”며 여경을 받아줬다. 외근을 시작하자마자 일이 터졌다. 범인이 피해자의 목을 찔러 살해한 사건이었다. 반장이 몰아치듯 물었다. 상흔의 모양은? 깊이는? 김 경위는 영안실로 뛰어갔다. 시신함의 손잡이를 잡고 수백 번을 망설였다. 시신에 덮인 천을 보고 손이 더 떨렸다. 결국 시신을 꺼내 상처의 모양과 깊이를 똑바로, 그리고 자세히 살폈다. ‘20대의 김성순’은 시신 사진도 보지 못하던 여자였다. 그는 “영안실에서 피해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것은 호러물(공포영화)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2007년엔 범인과 함께 피해자를 파묻은 곳을 찾아나섰다. 범인이 지목하는 곳을 삽으로 파는데, 뭔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형사들이 달려들어 호미와 손끝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서서히 사람 뼈가 윤곽을 드러냈다. “이런 게 형사가 하는 일”이라고 김 경위는 말했다.

# 잠복=2004년 말부터 2005년 초까지 노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만 터는 사건이 잇따랐다. 넉 달 동안 겨울밤을 잠복으로 지새웠다. 자정부터 아침 6시까지. 잠복조는 2인 1조다. 두 사람이 상승 효과를 내야 한다. 여자라서 상대가 불편해하면, 상대는 나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생리적인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그는 항상 화장실을 먼저 체크했다. 이때 김 경위는 3명의 범인을 잡았다. 김 경위는 “겨울밤 함께 잠복을 하면서 여자에서 파트너로 거듭났다”고 했다.

그는 기혼 남자 형사가 파트너가 되면 반드시 파트너의 부인을 찾아가 친구가 된다. 일하는 데 마음이 편해야 수사가 잘 되니까.

# 술=97년 여자형사기동대에 배정받으면서 형사 생활이 시작됐다. 27세이던 그때 처음 술을 배웠다. 술을 가르쳐준 이는 ‘여자 형사의 전설’ 박미옥(현 김천경찰서 수사과장) 경감이었다. 모든 계급을 특진으로만 올라갔다는 수사의 달인. ‘전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힘들지? 나도 힘들었어”라며 술을 따라줬다. 지금 술 실력은? “술을 잘 마신다고 소문난 사람 가운데 나보다 술이 센 사람은 없어요.”

김 경위는 “경찰을 시작한 여자라면 누구나 ‘강력반 형사’를 한번쯤 꿈꾼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의 벽에 막혀 많이들 포기한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 그래서 김 경위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김 경위는 1남4녀 중 셋째 딸이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는 언제나 싸움으로 끝난다. “말리는 걸 기어코 해서 결혼도 못 했다”는 엄마의 노기는 드세다.

“이것아, 니가 시집가야 내가 눈을 감지.”

“엄마, 내가 효녀라니까. 내가 결혼 안 하니까 엄마가 오래 사는 거야.”

강인식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김성순 경위는

- 소속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 학력 : 국민대 법학과, 원광대 물리학과 졸업

- 무술 : 합기도 1단, 유도 1단

- 경찰 경력 : 1995년 순경

1997년 서울경찰청 여자형사기동대

2002년 서울 중랑서 등 일선 경찰서 강력반

2007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 주요 사건 : 탤런트 전지현 휴대전화 복제 등 지능 범죄

에이즈 환자 살해 사건 등 강력 범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