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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국회 구조조정법 깔고 낮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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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각종 법률안이 국회에서 '낮잠' 을 자고 있어 구조조정 일정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구조조정 관련 법률안이 7월초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것을 전제로 55개 기업과 5개 은행 퇴출을 단행했으나 관련법이 통과되지 않아 편법 동원이 불가피한 실정이어서 위헌시비 등 심각한 후유증마저 예상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의 통과다. 현행법에 따르면 부실 금융기관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금융기관' 으로 돼있다.

이 경우 해당 금융기관의 자산.부채 실사가 끝나거나 결산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부실 금융기관이 될 게 뻔해도 금융감독위원회가 정리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돌발적인 예금인출사태나 거액의 금융사고가 터져도 금융당국이 손을 쓸 수 없다는 얘기다. 5개 은행 퇴출도 금감위의 내부규정에 의존하고 있어 위헌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게 금융계의 지적이다.

금감위는 지난달 29일 강원.충청은행에 대해 9월말까지 1백% 감자 (減資) 를 하도록 했으나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이 제 때 통과되지 않아 이를 지킬 수 없게 됐다.

현행법상으로는 1백% 감자 자체가 불가능하고 절차도 3~6개월이 걸린다. 예금자보호법도 마찬가지다.

법개정안이 7월 안에 통과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1일부터 정부보장한도 축소 등을 담고 있는 새 예금자보호법을 적용하는 것도 불가능해져 엄청난 혼란이 우려된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각종 세금감면 혜택도 조세감면규제법이 통과되지 않아 편법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

퇴출은행의 부동산 등 자산을 인수할 때 취득.등록세와 특별부가세를 면제해주는 게 개정안의 골자인데 법 통과가 지연되는 바람에 법을 소급적용하는 형태로 문안을 고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기업의 현금.상업차관 도입도 외국인투자법이 개정되지 않자 우선 재정경제부의 외국환관리 규정을 고쳐 만기 1~3년 상업차관만 자유화하고 정작 만기 3년 이상에 1백만달러 이상 상업차관 도입은 재경부 허가사항으로 남겨두는 촌극마저 벌어지고 있다.

외국투자가들의 관심사인 기업분할제도와 소수주주의 누적투표제 도입 등은 상법 개정안 처리지연으로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기관투자가 보유주식에 대해서도 의결권 행사를 허용한다는 계획 역시 증권투자신탁업법이 통과되지 않아 공염불이 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주식투자기금.부채구조조정 기금도 당초 7월초 설립 예정이었으나 증권투자회사설치법이 국회에 계류중이어서 늦춰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추진중인 금융.기업 구조조정은 앞으로 한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으로 외국인들에게 비춰지고 있다" 며 "국민과 해당 기업.근로자 등이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며 어렵게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이 정치권 갈등으로 좌초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정경민.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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