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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밀물은 모든 배를 띄워 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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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당 태종이 어느 날 좋은 활을 얻었다. 어려서 궁술을 익혀 활을 볼 줄 안다고 자부하던 그였다. 장인을 불러다 자랑을 했다. 그러나 장인은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 상한 황제가 이유를 묻자 장인이 대답했다. “무늬가 삐뚠 걸 보니 나무의 중심이 바르지 못합니다. 이런 나무로 활을 만들면 힘은 있지만 화살이 똑바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깊이 깨달은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나는 활과 화살로 천하를 평정했고 그동안 내가 사용한 것만도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소. 그런데도 여태껏 활과 화살의 깊은 이치를 깨닫지 못했던 거요. 하물며 천하를 얻은 지 얼마 안 된 내가 치국(治國)의 도리를 얼마나 알겠소.” 이후 태종은 5품 이상 관원들에게 교대로 당직을 서게 하고 매일 이들을 불러 대담하며 바른 정치를 깨치려 애썼다.

‘정관의 치(貞觀之治)’가 거저 나온 게 아니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는 치국의 도를 깨닫고 실천했기에 중국 최고의 태평성세가 가능했던 거였다. 절대왕정 시대도 그랬거늘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민주정치엔 활과 화살의 이치만큼이나 오묘한 시대정신(zeitgeist)이 있게 마련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한테 위임 받은 것이란 바탕 위에 그걸 어찌 사용해야 할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시대적 요구로 채색되는 것이다.

우리의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그랬다. 이승만 때의 시대적 요구는 건국이었다.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 땅에 공화국이 섰고 ‘듣도 보도’ 못한 민주제도들이 선을 보였다. 박정희 때는 빈곤 탈출이었다. “잘살아보세” 외침 속에 고배율 압축성장이 뻥튀기처럼 튀어나왔다. 전두환 때의 시대 요구였던 민주화는 군홧발에 밟혔다가 노태우 때 겨우 빠져나왔다. YS 때의 시대 요구는 그래서 군사문화 청산이었다. ‘문민화’란 이름으로 개혁들이 이뤄졌다. 하나회가 해체됐고 금융실명제가 도입됐으며 지방자치의 막이 올랐다. DJ 때는 화해였다. 남북, 동서로 화해가 시도됐다. 남북 간 극한 대치가 햇볕정책으로 바뀌었고 그 햇볕은 소외의 그늘, 호남 땅도 비추었다. 노무현 땐 권위주의 타파였다. 주인 향해 호령하던 거짓 권위들이 줄지어 무너져 내렸다.

이런 시대 요구들은 로또공처럼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라틴어 경구도 있듯 “자연은 결코 갑작스러운 비약을 하지 않는다(Natura non facit satum)”. 하나의 시대 요구는 앞선 시대 요구의 결과요, 다음 시대 요구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적 요구는 뭘까. 시대 요구를 알아보는 건 간단하다. 주권자인 국민이 왜 그 대통령을 뽑았는지 생각하면 된다. 지금 이 시대는 경제 살리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CEO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뛰었다. 무조건 파이만 키우면 될 것 같았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가진 자들하고만 발맞추는 것처럼 보였고 뛰면 뛸수록 못 가진 자와 멀어지는 듯했다. 그 사이 중산층들도 점점 뒤로 처졌다.

촛불에 데어보고 ‘살인마’도 돼보니 대통령은 활과 화살의 이치를 다시 헤아리게 됐나 보다. 중도를 말하고 서민을 얘기하며 정치를 입에 담았다. 말 많고 물 없는 강(江) 잇기보다 터지고 갈라진 국론 잇기가 시급함도 깨달은 모양이다. 이제야 치국의 도를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걸 알았다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시대 요구가 더 이상 착각이 아닐 터다. 경제를 살리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지만 그것이 기득권층에게 파이의 큰 쪽을 나눠주는 거란 오해 속에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체득했을 테니 말이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게 지난한 작업이지만 배를 띄우기도 뒤집기도 하는 물의 이치를 잊지 않고 풀어나가면 못할 것도 없다. 케네디의 말이 도움이 될 듯싶다. “밀물은 모든 배를 띄워 올린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