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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 다시 시작하자]4.기술축구만이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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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6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20세 이하) .한국은 프랑스에 2 - 4로, 브라질에 3 - 10으로 참패했다.

당시 한국은 개인기가 뛰어난 이들 국가에 번번이 1대1 돌파를 허용하며 허무하게 무너졌다.

축구에서 개인기가 뒷받침되지 않은 스피드와 조직력은 모래성과 같다는 정설을 입증해준 경기 내용이었다.

지난달 25일 프랑스월드컵 예선리그 벨기에와의 최종전. 서정원은 전반 GK와 1대1로 맞선 골찬스에서 어설픈 볼트래핑으로 기회를 놓쳤고, 최용수는 후반 두차례 결정적인 헤딩슛을 허공에 날려보냈다.

수비수들은 상대 개인기에 놀아나자 육탄방어에만 의존했다.

네덜란드전에서 한국의 수비수들은 베르캄프.코쿠.로날트 데 보어 등 뛰어난 개인기를 가진 선수들의 페인트 모션 한번에 속수무책으로 노마크 찬스를 내줬다.

축구에는 개인전술.부분전술.팀전술이 있다. 그러나 한국축구에서 개인전술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개인전술은 축구의 기본이다. 개인전술이 가능해야 다양한 부분전술도 가능하다. 패스할 곳이 없으면 자신이 직접 뚫어야 찬스가 생긴다.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선수의 개인기는 32개국중 가장 뒤떨어졌다.

개인기가 떨어지다 보니 여유를 찾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정확성마저 떨어졌다. 프랑스월드컵에서 드러난 세계축구의 흐름은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기술축구다. 브라질.프랑스.루마니아.아르헨티나 등은 남미식 개인기에 유럽의 힘과 스피드를 접목, '예술축구' 의 진수를 보여줬다.

개인기는 축구를 즐기는 자세에서 나온다.

한국에서 볼을 드리블하다가는 코치나 감독으로부터 혼찌검이 난다.

원터치 패스로 빠른 공격을 하는 게 한국의 공통된 패턴이다.

당장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개인기보다 조직력이 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각팀에서 개인 능력이 있는 선수들은 자연 도태되고 패스 잘하는 선수만 살아남는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감독이나 선수, 언론까지 모두 '조직력만이 살길이다' 라는 인식을 해왔다.

특히 84년 멕시코청소년대회에서 한국이 빠른 패스와 뛰어난 조직력으로 4강돌풍을 일으키자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한국축구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프랑스월드컵을 계기로 개인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 조직력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터득한 것이다.

유소년때부터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즐겁게 공을 차는 풍토 속에서 개인기가 몸에 배어야 한국축구는 되살아날 수 있다.

차범근 전 대표팀감독은 "A가 이쪽으로 들어가면 B는 저쪽으로 돌파하라는 식의 틀에 박힌 지시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며 "개인기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축구를 해야만 세계축구와 맞설 수 있다" 고 말했다.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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