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치원 보육교사는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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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순 할머니가 아산 동신초등학교 부설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실뜨기’놀이를 하고 있다. 조영회 기자

23일 오후 3시 아산시 온양동신초등학교 유치원. 대여섯 살로 보이는 남녀 아이 10여 명이 70대 초반의 할머니와 실뜨기 놀이를 하고 있다.

요즘 실뜨기를 아는 아이는 드물고 게다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모습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너도나도 “내가 할머니와 할거야”라며 자리다툼도 했다.

실뜨기 놀이가 끝나자 한 아이가 할머니 곁에서 동화책을 읽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더듬거렸지만 끝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아이들은 “할머니, 할머니” 부르며 병아리처럼 이 곳 저 곳을 쫓아다녔다. 이 아이들은 유치원 종일반 원생들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유치원교사들로부터 수업도 받고 할머니와 놀이도 한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 데다 평소 친할머니·할아버지와도 자주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은 할머니의 정에 푹 빠져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 준 할머니는 아산교육청과 동신초유치원이 고용한 ‘종일제 보조인력(3세대 하모니)’ 정복순(70·아산시 모종동)씨. 매일 유치원에 나와 아이들과 놀아주고 청소와 놀이, 간식 먹는 것도 거든다. 정씨는 “그 동안 무료하게 하루 하루를 보냈었다”며 “내 손주 같이 귀여운 아이들에게 동화책도 읽어주고 더러워진 손도 씻어주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씨는 “현장학습을 가는 날은 어릴 적 소풍을 가는 것처럼 들떠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준 교육청과 유치원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핵가족화 시대 할머니 정 느껴

정씨가 처음 3세대 하모니로 일한 것은 3년 전. 이 유치원에 다니던 손자를 데려다 주다가 사람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치원 측의 도움을 받아 서류도 만들고 면접을 봤다. 처음엔 어색하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라는 고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자들처럼 대해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정을 쏟았다.

정씨에게는 10명의 손자·손녀가 있다. 지금도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손자와 같이 살고 있다. 이런 정씨의 마음이 통했는지 아이들도 잘 따른다. 유치원을 마치고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정씨를 만날 때마다 한 달음에 달려와 ‘배꼽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정씨는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달려와서 인사를 할 때 가장 기쁘다”며 만족해했다.

종일제 보조인력 제도는 중·고령층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지원하고 육아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를 통해 저출산 경향을 줄이고 핵가족화 시대에 유치원에서 할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유아의 정서 함양과 세대간 교류에도 이바지한다.

아산교육청은 4월 중순 교육청에서 ‘2009 종일제 3세대 하모니 자원봉사자 연수’를 가졌다. 연수에서는 ‘유아교육현장에서 지원활동에 대한 역할’ 안내와 함께 교육현장에서 ‘책 읽어주기의 실제’와 ‘색종이 접기 워크숍’이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유아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지 어려움을 느꼈었는데 책 읽기 활동 강의와 3세대 하모니 자원봉사자의 역할, 유아와 함께하는 종이 접기 강의를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성준 아산교육장은 “자녀를 키우면서 느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잠재능력을 길러주고, 자율적인 어린이로 자라도록 할머님의 따듯한 마음과 사랑의 손길로 보듬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 교육장은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고운 심성을 갖도록 교사를 도와 교육활동을 지원해 달라”고도 했다. ‘3세대 하모니 교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3세대 하모니 자원봉사자는 40~60대 여성들로 유치원에서 하루 4시간씩 3월부터 2010년 2월까지 1년간 매달 교통비로 약간의 자원봉사활동비가 지급된다. 아산교육청을 비롯해 충남 전역에서는 2006년 40명의 3세대 하모니 자원봉사자가 처음 배치됐고 2009년에는 300명으로 확대됐다. 연령층도 50~60대 중·고령 여성에서 2009년부터는 40~60대로 연령을 하향 조정했다.

자원봉사자로 매달 교통비 지급

주요 활용은 유치원에서 교육활동을 보조하고 기본생활습관지도 보조, 급·간식 준비 등 바쁜 일손을 도와준다. 각 유치원에서는 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홍보를 하고 서류심사·면접 등을 통해 선발한다. 자원봉사활동을 원하는 40∼60대 여성은 매년 2월 중순부터 각 지역교육청 유아교육 담당부서에 문의하면 된다.

아산교육청 안경숙 장학사는 “3세대 하모니 제도 시행으로 학부모의 만족도에 부응하는 종일반 운영이 활성화됐다”며 “핵가족화로 세대 간의 교류가 단절된 유아들에게 할머니의 정(情)을 느낄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유아의 정서를 함양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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