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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환란 그후1년]4.발목잡는 불씨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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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제위기에 빠진 아시아 각국은 요즘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기업.금융.정부 분야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환란 (換亂)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암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일본의 경기침체와 금융불안, 그에 따른 엔 약세 현상은 자칫 아시아에 제2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중국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나 홍콩달러 페그제 (미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제) 붕괴 등도 마찬가지 악재가 될 수 있다.

지난 17일 엔화가치가 8년만에 최저치인 1백46엔대로 밀려나자 미국이 뉴욕 외환시장에 전격적으로 개입한 것도 아시아 위기가 재연 (再燃) 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시아에서 단맛을 본 국제 핫머니는 러시아.중남미.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개발도상국을 들쑤시고 있다.

위기극복에 몸부림치는 아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는 외부 변수들을 살펴본다.

① 엔화 가치하락

일본의 금융부실.경기침체는 아시아 경제에 치명적이다.

대형 금융기관의 잇따른 도산과 이에 따른 자금회수로 일본에서 돈을 빌려쓴 동남아 각국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다.

대 (對) 일본 수출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는 최근 "일본이 경기회복 및 금융개혁 조치를 늦춰 아시아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며 "당초 전망과 달리 아시아 위기가 연내 회복세로 반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특히 엔 약세가 지속될 경우 각국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엔화는 미.일의 시장개입 이후 한때 강세를 보이다 지난 24일부터 다시 1백40엔대로 미끄러졌다.

② 위안화 평가절하

엔 약세는 올들어 수출증가세 및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중국에 심각한 압력을 주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수출.내수 침체로 인해 당초 목표치 8%보다 2~3%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주룽지 (朱鎔基) 총리 취임 이후 속도가 붙고 있는 국유기업 개혁으로 인해 앞으로 3년간 대략 1천만명 이상의 새로운 실업자 발생이 불가피하다.

또 금융분야의 부실.후진성도 중국의 약점이다.

중국은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위안화 평가절하를 하지 않겠다고 철석같이 다짐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한 경제전문가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하반기까지 위안화가 15% 가량 절하될 가능성이 있다" 고 밝히는 등 회의적 시각이 여전하다.

③ 홍콩 페그제 유지

부동산.주식시장의 거품붕괴와 주변국의 경제위기 등으로 홍콩 경제는 지난 60년대 중반과 같은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헤지 펀드들의 홍콩달러 공격에 맞서 홍콩 금융당국은 고금리 정책 및 외환시장 감독강화 등으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투기세력의 공격이 거세지고 홍콩 경제의 기초여건이 악화될 경우 페그제는 언제라도 붕괴될 수 있다.

아시아의 금융중심지인 홍콩이 무너질 경우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날 것이다.

최근 홍콩의 경제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 미 달러에 대해 7.8홍콩 달러인 환율을 달러당 9.0 안팎으로 올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점진적으로 페그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④ 불안한 신흥시장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로 모스크바 증시가 폭락세를 보이고 러시아 루블화도 불안하다. 주가는 지난해말 이후 48%나 폭락했다.

러시아는 외채가 1천4백50억달러나 되는데다 경상수지 악화.금융기관 부실채권 증가 등 아시아 위기 발생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러시아는 29일 대출금리를 연 80%로 인상하고 IMF의 지원을 받기 위한 협상을 벌이는 등 회생노력을 벌이고 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러시아의 주요 채권국인 독일.일본 등이 동남아에서 대출금 회수에 나선다면 아시아 통화는 또 다시 폭락할 우려가 높다.

아시아 위기의 불똥이 튀고 있는 남미 경제도 불안하다.

남미 각국은 위기방지를 위해 긴축정책과 함께 금리를 30~40%대까지 끌어올려 기업도산이 줄을 잇고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

브라질은 1분기중 14년만에 최고수준인 8.9%를 기록했으며 아르헨티나.파나마.니카라과 등의 실업률도 살인적 수준이다.

러시아.남미 경제의 악화는 자칫 부메랑 효과를 낳아 아시아 위기에 상승작용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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