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제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가 되는 것이 목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간중앙한나라당의 새 실세로 등극했지만 여전히 ‘비주류’인 정몽준 최고위원. 최근 그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계파에 구애 없이 당을 향해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유력한 ‘잠룡’이기에 힘이 실린다. 과연 속내가 무엇일까? 어렵게 그와 마주 앉았다.

관련사진

photo

여의도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여당은 ‘집안싸움’에, 야당은 ‘거리투쟁’에 매몰돼 정작 국회 본연의 책무인 민심 돌보기는 추후로 미룬 듯하다. 이것이 2009년 6월 대한민국 정치판의 현주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에 드리운 혼란이 가중됐다.

여당 집안싸움 비판 … MB지지율 추락은 “포퓰리즘 극복 과도기 현상” #“계파는 필요하지만 정책 열려 있어야 … 안보 때문에 한나라 선택” #직격 인터뷰 -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

그 틈을 타고 여야 간 대립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중심을 잡아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국민보다 더 흥분한 나머지 케케묵은 ‘물어뜯기’ 전략으로 날을 세운 까닭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선 야당인 민주당의 판정승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6월3일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27.9%, 한나라당 24%로 집계됐다.

지난해 5월6일, 이른바 촛불정국 당시에도 한나라당 26.3%, 민주당 25.2%로 지지율 격차가 1.1%포인트까지 좁혀지기는 했으나, 다소나마 한나라당이 우위를 지켰다. 그러나 이번에 뒤집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곤두박질했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4월16일 32.6%에서 한 달여 만인 5월26일 현재 23.2%로 ‘뚝’ 떨어졌다.

특히 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69.4%로 나타났다. 집권세력의 추락.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맞기는 맞나 보다. 지난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은데다 국회 의석을 170석이나 차지한 거대 한나라당의 ‘내홍’이 점입가경이다. 친이(친 이명박계)대 친박(친 박근혜계)의 낡은 계파 갈등에 최근에는 당 쇄신 논란에 이르기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4·29 재·보선 참패의 원인분석이 미흡했던 탓일까? 이미 지난 2월, 한나라당의 어지러운 판국에 “우리가 균형 있는 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말씀 드린다”며 당 지도부 앞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 이가 있었다. “한나라당에 영혼이 살아 있느냐?”

포퓰리즘 대못 뽑는 과정

관련사진

photo

정몽준(58)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국회 정상화를 위해 여야가 합의할 당시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냐”며 던진 ‘폭탄발언’이었다.

그렇게 당이 내분과 갈등을 반복하는 사이 정 의원은 어느 한쪽에 휩쓸리지도, 휘청거리지도 않는 ‘소신맨’의 이미지를 쌓았다. 그래서 주목받았을까?

“최근 신문·방송에 오르내린 횟수를 계산하면 전체 의원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는 것이 국회 안팎에서 들리는 말이다.6월13일 오후 여의도에 위치한 ‘해밀을 찾는 소망’이라는 정책연구소에서 정 의원을 만났다.

이곳은 2월6일 개소한 정 의원의 ‘싱크탱크’다. 먼저 근황을 물었더니, 대뜸 “당이 좀 어려운 상황”이라며 본인이 아닌 당의 분위기를 전했다. 내친 김에 한나라당의 속사정부터 들어봤다.

-요즘 한나라당이 어지럽고 시끄럽습니다. 특히 최근 정당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낮게 나옵니다. 18대 국회 개원 이후 처음 아닌가요?
“그 이유는 바깥에서 보는 것과 제 생각의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요? 우선 한나라당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 너무 집안싸움만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시는 분이 많은데, 맞는 말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지지율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봐야 합니다. 과거 참여정부의 정책은 소위 인기영합주의적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보고, 대부분 한번 거기에 걸려든 국가는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고 많은 학자는 말합니다. 그것을 수정하려면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지금은 그 대못을 뽑는 과정입니다. 또 당분간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위해 힘들더라도 국민이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한나라당이 불안정해 보이는데, 정 의원께서 보기에 당 내부는 어떻습니까?
“지난 1주일 동안 미국에 다녀 왔는데, 신문을 보면서 답답하고 착잡했습니다.”

관련사진

photo

2007년 12월3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몽준 의원이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고 있다.

정 의원은 한창 시끄러운 계파 간 갈등을 꼬집었다.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언급하면서 계파의 성립과 존재가치를 인정하지만, 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문제의 화근이라고 설파했다.

“계파는 있을 수 있다고 봐요. 그러나 같은 진영이라고 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좀 그렇잖아요? 170명의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일 텐데, 지금의 모습을 보면 너무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조직이든지 성공하려면 먼저 열어야 합니다. 닫힌 조직은 성공하는 것을 못 봤어요. 여당으로서 한나라당도 열린 조직이 돼야 합니다. 물론 친소관계라는 점은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연고 때문에 미래의 정책이 다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당의 쇄신특위가 지도부의 책임을 물어 사퇴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조기 전당대회도 거론됩니다.
“현재 논쟁은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여의도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가 책임당원의 73.7%가 전당대회를 해야 한다고 나왔습니다. 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하지 말자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계속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인상 쓰지 말고 웃어가면서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하기는 해야 하는데 언제쯤 해야 하느냐는 것을 갖고….”

-정 의원께서는 빨리 하자는 쪽 아닙니까? 최근 “박근혜 전 대표 나와라” 또 “준비된 사람부터 나와라”라고 하면서 자신감 섞인 발언을 하셨는데요.
“자신감 없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죠. 최고위원 1년 했는데, 운영을 잘못했다기보다 국민의 기대가 1년 전과 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한나라당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 당원들의 생각이고요. 박 전 대표가 안 나온다면 이유가 있겠죠.”

정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당시 대표최고위원 후보 가운데 여론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최종 개표 결과 현 박희태 대표에 밀려 2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당 안팎에서는 “한나라당 입당 6개월 만에 얻은 ‘수확’이지 않느냐”고 평가했다.

“주류가 되는 것이 목표”

-지난 전당대회 당시 여론조사에서 타 후보들보다 훨씬 앞섰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가 달랐습니다.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지난번에 저희 집사람이 매일 기도했는데, 제발 1등이 안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대요. 이유는 입당한 지 얼마 안 돼 기반이 없는 사람인데 1등이 되면 안 될 것 같아 그랬답니다. 당원들께서 제가 입당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정도 지지해 주셨으면 잘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순간에 국민이 현명한 판단을 하셨다고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항간에는 여론이 정 의원의 동반자라는 말도 나옵니다.
“아직 비주류라서…. 저 역시 이제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웃음)

-그간 홀로 외길을 걸어오면서 외롭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은 다 외롭지요. 제가 무소속 의원을 오래 했잖아요? 이제 당에 들어와보니 주류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당 후에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소신발언을 계속하는데, 돌아보니 어떻습니까?
“제 자신이 좀더 신중해져야 하고, 바른말을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속담에 ‘틀리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너무 빨리 바른말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두 발 앞서가면 안 되고 한 발만 앞서가야 된다’고요. 흔히 지도자는 앞서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너무 앞서가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저도 신중하게 하려고 합니다.”

정 의원은 한때 한나라당과 대척점에 있었다. 2002년 대선 당시 그랬다. 그러나 5년 뒤, 많은 사람이 정 의원의 선택에 깜짝 놀랐다. 지난 대선 직전인 2007년 12월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한 것이다.

-한나라당에 입당한 진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입당 후 “한나라당에 영혼이 있느냐” “엉성한 친목단체 수준”이라는 등 상당히 실망한 듯한 발언을 많이 하셨는데요.
“우리나라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국가안보라고 봐요. 국가안보가 튼튼하면 사회 전 분야에 이롭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2001년인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6·25전쟁이 제2의 통일 시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 핵개발이 일리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국가안보에서 걱정스러운 말씀입니다. 어쨌든 한나라당이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가장 적합한 정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안보를 중시 여기는 정 의원의 대북관이 궁금했다. 최근 대외적으로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도발 가능성,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선언 등으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먼저 정 의원이 생각하는 해법부터 물었다.

관련사진

photo

2008년 1월 대통령 당선인 특사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한 정몽준 의원 일행이 미국 상무부에서 구티에레즈 상무장관 등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현대는 외교력이 국방의 토대”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입니다. 정 의원의 대북관과 관계 정상화 방안은 무엇입니까?
“말할 것이 여러 가지인데, 우선 최고책임자인 대통령들은 역사에 남고 싶어 하잖아요? 대통령이 할 일이 산업화·민주화, 그리고 통일이라고 본다면 만에 하나 통일에 대한 접근이 포퓰리즘 도구로 전락할 수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 7·4남북공동선언,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햇볕정책과 6·15공동선언, 노무현 전 대통령 때 화해교류정책과 10·4공동선언 등이 우리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북한에서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죠. 중요한 것은 목표는 있더라도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북은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군사능력을 파악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저 추측하고 마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솔직히 김정일의 생각을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끼리 말싸움할 때가 아닙니다. 보수와 진보가 모두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정 의원은 이 답변 뒤 양복 상의를 벗었다. 그러고는 “대답하기 힘들다”며 목을 축였다.

-연장선상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원칙을 지킨다고 했는데,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하기는 힘들 거예요. 지난 10년간 궤도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다시 본궤도로 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현 정부의 정책이 기본적으로 화해와 교류의 정책인 것은 분명해요. 그러나 요즘처럼 군사적으로 대치될수록 외교를 더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조금 유연했으면 좋겠어요.”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조금은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나 생각해요. 하기는 북한이 워낙 궤도에서 크게 이탈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유연하게 하고 싶어도 힘들 거예요.”

정 의원은 ‘외교’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잠시 <삼한지>의 내용을 인용하며 “외교를 국방으로 여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지는 정 의원의 말.

“<삼한지>에 외교력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신라·백제·고구려 중 군사력이 제일 약한 나라가 신라였는데, 신라의 김춘추가 당 태종과 한 이불에서 자면서 거사를 하기로 도모하고 나당이 연합하잖아요? 물론 지금은 신라보다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하는데, 어쨌든 그만큼 외교력이 중요한 거예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자주국방’이라고 했는데, 사실 저는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국민의 정신이라고 봐요. 외교력으로 국방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자 그대로 국방력만으로 국방을 하는 것은 힘이 많이 들어요.”

[전문은 월간 중앙 7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오흥택 월간중앙 기자 [htoh@joongang.co.kr]
사진 김현동 월간중앙 사진기자 [lucida@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