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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자기중심적 낙관주의'월드컵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축구를 보면 이른바 민족성 내지는 국민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브라질팀의 축구는 삼바춤의 리듬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고, 독일팀의 그것은 조직적이고 견실한 독일국민성의 표상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축구팀은 이번 월드컵의 큰 마당에서 우리 국민성의 무엇을 세계에 보여준 것일까. 다행히 우리팀은 벨기에와의 대전에서 1대1 무승부를 이끌어낸 투혼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이 자위 (自慰) 와 안정감을 찾도록 기여하기는 했다.

하지만 외국신문들의 보도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절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동시에 그런 보도내용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 축구팀에 대해서 지적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매스컴 전반에 가해진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첫째로 지적된 것은 한국의 국민성이 '자기중심적인 낙관주의 (樂觀主義)' 인 듯 싶다는 것이었다.

비록 일부의 외국언론이 지적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 낙관주의적 성향의 근거로 상대팀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나 정보없이 주관적인 생각과 의욕만으로 경기결과를 예측했다는 보도에는 변명할 길이 없다.

사실 멕시코를 제물로 삼고 16강에 진출한다는 예상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고 가상 (假想) 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낙관주의는 그것을 마치 현실화되는 것인 양 생각했고, 급기야 우리나라의 매스컴은 북치고 장단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데 이런 낙관주의는 결과가 예상과 달리 빗나갔을 때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 실패한 사람들, 다시 말해 감독과 관련자에 대한 세찬 비난을 퍼붓는 성향 (性向) 을 지닌다고 한다.

적어도 월드컵축구와 관련된 테두리에서 여태까지 우리 매스컴이 보도한 것들을 돌이켜보면 부질없는 낙관주의와 실패의 보상심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보도야말로 매스컴이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정확한 정보와 철저한 분석이 없는 기사란 항상 허구 (虛構) 일 뿐임을 새삼 명심해야 하리라고 믿는다.

우리나라 축구팀과 관련한 외국신문 보도의 두번째 포인트는 우리 축구팀이 기술.전술.신체능력의 어느 면에서도 세계수준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이 네덜란드에 5대0으로 대패한 것을 일컬어 우리의 매스컴은 한국의 '참패' 요 '치욕' 이라고 표현했지만 외국의 권위있는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해서 네덜란드가 훌륭하게 잘 싸웠다고 평가하지는 않았다.

부연한다면 네덜란드가 이긴 것은 수준차이 때문이지 게임운영이나 작전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분석이었다.

이러한 분석에서 나는 일류전문가 내지는 스포츠기자의 냉혹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흔히 공은 둥글기 때문에 승패를 점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력차이가 현격하지 않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여겨야 한다.

실력차이가 월등할 때는 게임 자체에 어떤 감흥이나 흥분조차도 사라지는 것이며, 그런 전형적인 예가 바로 한국 - 네덜란드전이었다는 것이 외국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번 월드컵축구는 이른바 세계표준, 즉 '글로벌 스탠더드' 로서의 축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월드컵축구는 국경을 초월한 세계화와 내셔널리즘이 상극하는 현실세계의 축도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축구팀의 조직 내지는 질서와 개인기 (個人技) 의 혼돈 (混沌) 이 자아내는 게임으로서의 흥미에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표준' 으로서의 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 즉 스피드와 밸런스, 그리고 기술력이 없이는 결코 세계수준의 축구팀이 이뤄질 수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스탠더드로서의 스포츠저널리즘, 나아가 신문의 존재양식은 어떻게 돼야만 하는 것일까.

한국축구의 '참패' 와 '치욕' 은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 매스컴과 인과 (因果) 관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런 바탕에서 '세계표준' 의 길로 착실하게 새 출발해야만 할 줄 안다.

이규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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