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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해외증권 투자 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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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나라 돈은 못믿겠다. 달러가 최고다' . 최근 일부 부유층들의 해외증권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자산디플레로 주식.부동산값이 폭락하고 엔저에 따른 원화 환율불안이 이어지자 부유층 사이에 원화자산을 '달러표시 자산' 으로 바꾸는 투자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27일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월말 현재 국내 투자자들이 매입한 외국증권 규모는 2천5백34억원으로 연초의 1천4백75억원에 비해 2배가량 늘었다.

이는 해외증권 투자가 자유화된 95년 31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3년새 금액으론 80배가 넘게 급증한 것이다.

이중 외국주식은 1천2백79억원으로 연초의 3백24억원보다 4배가량 늘었고 외국채권은 1천38억원으로 연초의 8백87억원에 비해 18%가량 늘었다.

외국주식이나 채권을 매매하는 대형 증권사에는 최근 해외증권 투자에 대한 문의전화가 평소의 10배이상 늘었다.

특히 거액예금은 원금보장이 안되는 예금자보호법이 발표되고 엔화가 급락했던 지난달 중순이후엔 그간 한달 평균 3~4건에 불과했던 해외증권투자용 신규계좌 개설도 20여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D증권 관계자는 "올들어 계좌수로는 2배가량, 금액으로는 3~4배 가량 늘었다" 며 "지난해 계좌당 1억원에 그쳤던 거래액도 현재는 평균 3억원 정도로 커지는 추세" 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개인 10억원, 법인 20억원으로 돼있던 해외투자 한도가 철폐된데다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투자액도 대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개인의 경우 10억원 이상 거래시에는 국세청 신고대상이 되기 때문에 9억8천만원, 9억9천만원 식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S투자증권 담당자는 "세금문제보다는 투자자들이 신분노출을 꺼리기 때문" 이라며 "지난해말부터 올초사이 원화폭락으로 투자원금 6억원이 45일만에 13억원이 된 모대학 교수는 즉시 환매하면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국세청 신고를 꺼려 환매를 포기, 현재는 평가익이 9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고 말했다.

특히 최근의 해외증권 투자자들은 수익률보다는 '보유재산의 안전성' 을 중시해 달러자산을 집중 매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신규투자가 대거 몰린 미국계 투자은행의 수익증권 수익률이 평균 15% 안팎으로 국내 채권투자 등에 비하면 훨씬 떨어진다.

이와 관련, H증권 관계자는 "최근 투자자들은 수익률 불문하고 가장 안전한 상품을 찾는다" 며 "이들은 대부분 교수.의사.변호사 등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밝은 전문직 종사자들로 상대적으로 한국경제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고 말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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