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집 아들, 정치에 뿔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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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방문은 떡볶이 가게 매상에 악영향을 미치는가.

요즘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새 이슈다. 이른바 ‘떡볶이 공방’이다. 이 논쟁은 지난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예고 없이 떡볶이 가게에 들르면서 촉발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민생 탐방 형식으로 서울 이문동의 골목 상가를 찾아갔는데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는 장면이 다수 언론에 보도됐다. 이 대통령은 이어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했다.

민주당은 다음 날 이를 ‘정치쇼’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4선의 이석현(안양 동안갑) 의원은 26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을 하겠다고 했는데 시장에 돈 10만원 들고 가서 떡볶이 팔아 주고 고아원에 가서 아이들 들어 올리는 것이 근원적 처방이냐”고 공격했다. 여기까지는 으레 있는 야당식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 의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대통령께 말씀드린다. 떡볶이집에 가지 마십시오. 손님 안 옵니다. 아이들 들어 올리지 마십시오. 애들 경기합니다”고 외쳤다. 이 발언이 일부 인터넷 매체에 “떡볶이집 가지 마라. 그 집 망한다”는 식으로 보도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떡볶이 가게 주인의 아들이라는 박모(27)씨는 그날 저녁 이 의원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저희가 MB(이 대통령)에게 와 달라고 사정이라도 했나. MB도 한 명의 손님일 뿐이다. MB가 지나가는 길에 먹고 갔다는 이유로 저희 집은 망해야 하느냐”고 항의했다. 박씨는 “의원님 말 한마디가 서민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이문동 일대 상인들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의원의 최근 ‘이 대통령 하야’ 발언으로 가뜩이나 이 의원을 벼르고 있던 한나라당은 기다렸다는 듯 총공세에 나섰다. 윤상현 대변인은 “정신감정을 받아야 할 정도의 저질 발언”이라며 “민주당 의원들도 이 의원 발언에 웃고 박수를 쳤다고 하니 민주당은 서민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에 이 의원은 28일 성명을 내고 “본인은 떡볶이집이 망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는데 한나라당이 왜곡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민주인사의 발언을 교묘히 왜곡해 감옥에 쳐 넣었던 군사정권의 후예답다”며 거꾸로 윤 대변인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이문동이 지역구인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이 나섰다. 장 총장은 “손님 떨어진다는 것이나 망한다는 것이나 같은 얘기”라며 “민주당 말대로라면 이 대통령이 들른 빵집·과일행상·생선가게도 다 망하게 생겼다”고 흥분했다. 조윤선 대변인도 “아이가 경기를 하는 게 엄마한테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데 정당의 이익을 위해 그런 악담을 하느냐”고 가세했다.

떡볶이 가게 아들 박씨는 이날 재차 한나라당 대변인실로 e-메일을 보내 “제가 진정 드리고 싶은 말은 이 당 저 당을 떠나, 서로 비아냥거리고 헐뜯는 일부 의원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것”이라며 “싸우려고 국회의원 되셨느냐. 안 그래도 힘든 국민인데 뉴스 읽었을 때 신이 절로 나는 뉴스가 나오게 해 주면 안 되느냐”고 여야에 호소했다.

 김정하·임장혁 기자

[사진더보기]▶이문동 떡볶이집에 간 이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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