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만 한 얼굴이 부럽다? 머리 크면 머리 좋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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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체중(비만)이 고혈압·당뇨병·심장병 등 성인병의 발병 요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키·다리 길이·머리 크기·손가락 길이 등이 개인의 ‘질병 지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롱다리나 숏다리가 걸리기 쉬운 병이 있다는 말이다. 머리 크기에 따라서도 요주의 대상 질환이 달라질 수 있다. 체형과 질병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서양에서 이뤄졌다. 우리 국민에게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다. 그러나 참고는 할 만하다.

일러스트=강일구

키 크다 전립선·난소암 생길 가능성 커

키가 크면 작은 사람에 비해 유방암·난소암·전립선암·췌장암 등에 걸릴 위험이 높다. 폐경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키가 클수록 난소암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역학회지’ 2003년).

또 ‘뉴잉글랜드의학저널’ 2004년 논문에 따르면 사춘기 때 성장속도가 빠르고 키가 큰 여성일수록 유방암 발생률이 높았다. 이유는 잘 모른다. 일부 전문가는 키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이 유방의 유관세포 양을 늘린 탓으로 본다.

국립암센터 노정실 박사는 “진료실 경험상 키 작은 유방암 환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분명하다”며 “우리나라 여성 50여만 명의 건강 자료를 분석한 결과 키가 1m60㎝ 이상인 여성은 1m57㎝ 이하 여성보다 유방암에 걸리기 쉬운 것으로 밝혀졌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유방의 크기와 유방암 발생률은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여러 연구들을 모아 분석한 결과 키가 10㎝ 클수록 전립선암 발생 위험은 6%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암 역학, 바이오마커와 예방’지, 2008년). 연구자들은 어릴 때의 영양 ‘과잉’이 전립선암의 성장을 돕는 IGF-1의 혈중 농도에 영향을 미친 결과일 것으로 추정한다.

키 작다 당뇨병·심근경색 위험 높아

키가 작으면 심근경색·고혈압·당뇨병 등의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도 있다.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박경희 교수는 “키는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주로 결정되지만 어릴 때(태아 시기 포함)의 영양 상태나 생활 환경 등이 나빠도 덜 자라기 쉽다”며 “자궁 내나 유년기의 부실한 영양 섭취가 당뇨병·비만 등의 촉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60대 이상 여성 4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다리 길이가 짧을수록 2형(성인형) 당뇨병 발생 위험과 인슐린 저항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Diabetologia’지 2002년).

또 키가 1m70㎝ 이하인 남성은 1m85㎝ 이상인 남성보다 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최고 60%까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미국 하버드대). 키가 작으면 동맥의 길이가 짧아 지방이 쌓이기 쉽다는 것이 연구팀의 가설이다.

머리 크다 뇌 용적 큰 만큼 지능 높아

‘작은 머리’는 요즘 청소년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IQ나 치매 발생 위험을 고려하면 ‘큰 머리’가 낫다.

한강성심병원 신경과 민양기 교수는 “출생 시 머리 둘레가 큰 아이가 지능이 좋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Pediatric’지, 2009년)”며 “머리 둘레나 뇌 용적이 클수록 IQ가 높기 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소개했다.

머리가 작은 사람이 치매에 걸리기 쉽다. 뇌의 신경세포는 재생이 안 되는 데 신경세포가 죽는 것이 치매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한설희 교수는 “머리 둘레나 뇌 용적이 큰 것은 인지 기능에 여유분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자(신경세포가 많은 사람)는 망해도 3년 간다”는 속담과 같은 이치라는 것.

다리와 팔 길이가 짧을수록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국내 연구결과(전남대병원)도 있다. 연구팀은 짧은 사지는 어릴 때 영양이 불충분했다는 뜻이며, 이것이 뇌 발달에 나쁜 영향을 미친 탓으로 풀이했다.

둘째·넷째 손가락 길이 비율도 연구 대상

둘째(집게) 손가락 길이를 넷째(약) 손가락 길이로 나눈 값(비율)도 때때로 질병의 예고 지표로 활용된다. 이 비율은 엄마 자궁 속에 있을 때 형성되며 성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양대병원 정신과 김석현 교수는 “이 비율이 낮으면 임신 중에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며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 비율이 낮으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영향을 더 받은 것이다. 우울증·식이장애(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가 있는 여성이 이 유형에 속하기 쉽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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