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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방문 서양 선교사는 프랑스 드라포르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서양인 신부가 우리나라를 최초로 방문한 시기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90년이나 앞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우리 역사에는 프랑스인 신부 피에르 모방이 1836년에 우리나라를 가장 먼저 찾았던 서양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명지대 - LG연암문고 (이사장 유영구) 의 백성현 (白聖鉉) 교수가 최근 프랑스의 고서점에서 조선여행기가 담긴 '프랑스인 여행가 (Le Voyageur Francois) :신구 (新舊) 세계에 대한 견문' (1772년 프랑스 셀로출판사刊) 을 찾아냄에 따라 서양신부의 최초 입국시기가 크게 앞당겨지게 된 것이다.

편지 형식으로 쓴 이 여행기의 저자는 프랑스인 신부 드라포르트. 총 4백54쪽 중 2백66쪽에서 2백98쪽까지 73번째의 편지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생활상과 종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끝부분에는 '1747년 2월 15일 조선의 수도, 경기도에서' 라는 기록까지 남겼다.

'조선의 수도, 경기도' 라는 대목이 좀 엉뚱하게 들리지만 1870년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A 윌리엄슨의 '중국북부와 조선여행기' 를 보면 "조선인들은 수도를 서울로 부르지만 중국인들은 경기라고 부른다" 는 귀절이 있어 중국에서는 경기가 조선의 수도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드라포르트 신부는 글 머리부분에서 다른 카푸친회 (프란체스코회의 한 분파) 소속 선교사 한명과 함께 중국관리들에 끼여 조선을 방문했기 때문에 입국이 쉬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18세기 프랑스는 중상주의적 팽창정책을 펼치던 때여서 중국에 지리.수학 등 과학에 밝은 선교사들을 파견해놓고 선교뿐 아니라 지도제작 같은 활동을 벌이도록 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18세기 중반에 중국에서 활동하던 프랑스인 선교사는 80여명으로 다른 어느 유럽국가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계와 종교계에서도 프랑스 선교사들이 최초로 입국하려다 실패했다는 1707년부터 1836년 모방 신부가 들어올 때까지 1백30년 동안 조선을 찾았던 선교사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점에 의문을 품어왔다.

드라포르트 신부의 책은 그동안 '공백' 으로 남아있던 이 기간에 교회교류사를 밝히는 작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드라포르트는 신부라서 그런지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유교를 믿었으며 큰 사찰에는 5백~6백명의 스님이 있고 어떤 도시에는 스님의 숫자가 4천명이나 되었다고 적고 있어 당시 불교억압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상당히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드라포르트가 조선에서 선교활동을 벌였음을 말해주는 글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검토한 조광 (趙珖.고려대) 교수는 "하멜이나 세스페데스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조선과 만난 것과는 달리 드라포르트 신부는 조선을 알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선을 찾은 첫번째 유럽인" 이라며 "서세동점 (西勢東漸) 의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강화돼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책" 이라고 말했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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