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감정 전 국과수실장 오늘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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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돈을 받고 양심을 판 허위감정인가. 아니면 사심은 없지만 능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감정을 한 것일까' . 지난 91년 姜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자살한 金기설씨의 유서를 姜씨가 대필했다고 판정, 사건 전개에 결정적 작용을 했던 金형영 (57)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의 허위감정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15일 오전 내려진다.

金씨는 6.25때 등기부 등이 소실된 경기도파주시.연천군 일대의 토지매매문서를 위조한 뒤 국가상대 소송을 걸어 국유지 37만여평을 가로채려 한 토지사기범 金재간 (56.구속중) 씨와 짜고 법정에서 위조된 토지매매문서를 진본으로 판정한 혐의 (허위감정) 로 구속기소됐다.

법원이 허위감정 혐의를 인정, 金씨에게 유죄를 선고할 경우 국과수에서 일하며 많은 사건에서 문서감정을 했던 金씨의 도덕성이 엄청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金씨의 감정이 결정적 작용을 한 재판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전국에 9명뿐인 것으로 알려진 사설 문서감정인 중 3명이 이 사건에 연루돼 있으며 다른 1명도 유사한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라 문서감정 때문에 억울한 죄를 뒤집어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반발도 예상된다.

金씨는 지난 95년에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 사건이 터지자 함세웅 신부 등 강기훈무죄석방대책위와 재야인사들은 金씨 감정이 중요한 증거로 채택돼 실형이 선고됐던 姜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金씨를 허위감정 혐의로 고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검찰은 '돈은 받았지만 허위감정을 하지 않았다' 는 논리로 무혐의 처리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 문서감정과 관련된 사건의 재심청구가 쇄도할 전망이다.

3년형을 마친 姜씨도 출소 후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차원에서 재심을 청구할 방침" 이라고 밝힌 바 있다.

金씨가 무죄판결을 받아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 주범 金재간씨가 위조한 서류는 모두 48건에 이른다.

이 많은 서류에 대해 모두 실수로 오판을 했다면 감정인의 증거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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