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 민원성 고소·고발 늘어 정상업무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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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광주북부경찰서 조사계 직원 K씨는 요즘 푸념이 절로 나온다.

외상값 등을 받아달라는 민원성 고소.고발이 폭주해 정작 해야할 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K씨가 갖고있는 고소.고발건은 모두 1백여건. 통상 1개월안에 처리토록 돼있는 경찰관 직무규칙을 지키자면 하루에 3~4건씩 처리해야 하나 밤늦게까지 일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접수사건의 대부분이 소액심판제도나 민사재판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여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보면 짜증날 때가 많다.

K씨는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로 보고 도움을 요청하겠거니 좋게 생각하려 하지만 때론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최근 떼인 돈이나 외상값, 전자제품 판매대금을 받아달라는 등 민원성 고소.고발이 일선 경찰서에 폭주하고 있다.

채무자가 잠적해 찾을 수 없거나 조사과정에서 떼인 돈의 일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엄포성' 이 대부분이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IMF한파로 인한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선 경찰서에 민원성 고소.고발이 밀려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달 광주북부경찰서 조사계에 접수된 고소.고발은 모두 4백5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가량 늘었다.

특히 접수사건 가운데 10%정도는 경찰이 피고소인 조사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명백한 민사관계로 사건 접수후 곧바로 종결처리 (각하) 됐다.

지난해 같은달 각하된 접수사건은 3건에 불과했다.

전주경찰서에도 하루 평균 15~20건, 많을때는 30건 이상씩 접수되는 등 지난해보다 30~40% 늘었다.

전체 고소건수 가운데 80~90%는 금전 채무.채권과 관련된 것. 최근 광주서부경찰서엔 술값 5백여만원을 받아달라는 단란주점 주인 李모 (38.광주시서구화정동) 씨의 고소장이 접수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의류와 TV.세탁기 등 전자제품 판매대금 회수, 돈떼먹고 도망간 다방.술집 종업원 추적을 호소하는 내용의 고소도 늘고 있다.

아예 외상값 장부를 들고 와 고소장을 접수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전주경찰서 양태규 (楊太圭) 수사과장은 "채무관계 고소가 급증, 경찰 본연의 업무를 방해할 정도" 라며 "일정액의 인지세를 부과, 이를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는 "접수사건의 과반수는 조사해도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미한 사안인 만큼 소액심판이나 민사재판을 제기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고 조언했다.

장대석.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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